원장의 일
PATIENT FUNNEL · WEBBOOK

원장의 일

꿈이 감옥이 된 원장들을 위한 열여섯 개의 질문
개원 전날 밤, 내 이름을 걸고 내가 옳다고 믿는 진료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모든 원장님께.
문석준PATIENT FUNNEL · 2026
PROLOGUE

몇 번이고 다시 꺼내 읽는 책이 하나 있다

고백부터 하고 시작하겠다. 나는 경영서를 많이 읽는다. 개원하고 나서 답답할 때마다 책으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읽은 수백 권 가운데 몇 번이고 다시 꺼내 읽는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그중 한 권이 마이클 거버의 『사업의 철학』이다. 사십 년 전에 나온 책이고, 치과 이야기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빵집과 파이 가게와 정비소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덮었다. 페이지마다 내 이야기가 나와서다. 업종이 전부 다른 전 세계 소상공인 수백만 명이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다들 자기 이야기라고 느꼈고, 그것이 이 책이 사십 년째 죽지 않는 이유다. 이 책은 그 책에서 내가 건진 인사이트를 병원의 언어로 옮긴 기록이다.

파이를 사랑했던 사라

그 책의 첫 장에는 사라라는 여자가 나온다. 사라는 어릴 때 이모 집 부엌에서 파이 굽는 법을 배웠다. 이모와 파이를 굽던 그 부엌의 냄새와 온기가 사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이다. 커서도 사라의 파이를 먹어본 사람들은 똑같이 말했다. 이건 팔아야 한다고. 그래서 사라는 온 저축에 대출까지 넣어 가게를 차렸다. 가게 이름도 예뻤다. 온통 파이에 관한 것.

삼 년 뒤 저자가 사라를 만났을 때, 사라의 첫마디는 이랬다. 저는 이제 파이가 싫어요.

새벽 세 시에 나와 파이를 굽는다. 낮에는 손님을 받고 계산을 하고 직원과 싸우고 세금 서류를 만진다. 밤에는 재고를 세고 청소를 한다. 집에는 자러만 간다. 매출은 있는데 남는 것이 없고 몸은 부서지기 직전이다. 그리고 가장 아픈 것은 이모의 부엌에서 느꼈던 그 행복이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라는 파이가 좋아서 가게를 열었고, 그 가게가 사라에게서 파이를 빼앗아 갔다.

이제 파이를 진료로 바꿔보자. 원장님은 진료가 좋아서 이 길에 들어섰다. 손에 익어가는 술식이 좋았고, 환자가 낫는 것이 좋았고, 고맙다는 말이 좋았다. 그래서 내 이름을 걸고 내가 옳다고 믿는 진료를 하려고 병원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아침부터 밤까지 병원에 있는데 하루가 끝나면 오늘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진료를 봤고 결재를 했고 직원 이야기를 들었고 업체를 만났다. 정작 개원하던 날 그렸던 그 병원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원장님들께 받아 온 질문들을 다시 읽었다. 표현은 달랐지만 결국 한 문장이었다. 이렇게 살려고 개원한 게 아닌데. 이 책의 부제가 그 문장에서 나왔다. 꿈이 감옥이 된 원장들. 원장님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사라도 그랬고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장이 그랬다. 나만 이런가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펼쳤다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벽을 만난 원장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부터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이 책은 기법의 책이 아니다

나는 그동안 마케팅 채널, 상담 동의, 직원 관리 같은 기법을 이야기해 왔다. 그 기법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마주친 벽이 있다. 같은 기법을 배워 가도 어떤 병원에서는 자리를 잡고 어떤 병원에서는 사흘 만에 증발한다. 차이는 기법이 내려앉을 바닥이 있느냐였다. 원장의 관점과 시간과 구조라는 바닥이다.

이 책은 그 바닥에 관한 책이다. 신환을 늘리는 법이나 동의율을 올리는 법은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모든 법이 왜 지금까지 병원에 자리 잡지 못했는지, 자리 잡게 하려면 병원과 원장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다룬다. 바닥이 생기면 그동안 배운 것들이 비로소 내려앉기 시작한다.

왜 병원 책이 아니라 이 책인가

병원 경영서도 많은데 왜 업종도 다른 사십 년 전 책인가. 이유는 세 가지다.

  1. 사람에서 시작한다. 병원 경영서는 대체로 기법에서 시작하지만 그 책은 사업하는 인간의 내면 구조에서 시작한다. 개원가의 진짜 문제는 기법의 층이 아니라 그 아래층에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2. 사십 년을 살아남았다. 트렌드 책은 삼 년이면 낡는다. 채널과 도구는 바뀌어도 사람과 구조의 원리는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3. 업종이 달라서 오히려 좋다. 병원 이야기로 들으면 우리 병원은 다르다는 방어가 먼저 올라온다. 빵집 이야기로 들으면 방어 없이 구조가 보이고, 그 구조를 병원에 대입하면 보이지 않던 우리 병원이 보인다. 남의 이야기라는 거리가 거울이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내 역할은 통역이다. 빵집의 언어를 개원가의 언어로, 사십 년 전 미국을 오늘의 한국으로 옮긴다.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대목은 맞지 않는다고 정직하게 말하고 우리 버전으로 바꾸겠다. 그런 대목이 두어 군데 나온다. 본문에서 「그 책」「저자」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사업의 철학』과 마이클 거버를 가리킨다.

열여섯 개 질문의 지도

이 책은 그동안 원장님들께 자주 받아 온 질문 가운데 열여섯 개를 골라 하나씩 답한다. 질문은 세 덩어리로 묶인다.

부 무엇을 다루나 질문
1부 · 꿈이 감옥이 되는 경로 모든 개원이 지나가는 정해진 길과 내 병원의 좌표 01 페이닥터 때보다 낫다고 말을 못 하겠습니다 · 02 사업가 체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 · 03 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돌아갑니다 · 04 직원이 늘었는데 제 일은 안 줄었습니다 · 05 다시 줄이고 싶습니다 · 06 잘되는 병원들은 뭐가 다릅니까
2부 · 감옥의 문을 여는 열쇠 하나만 뒤집으면 되는, 그러나 뒤집기 어려운 관점의 전환 07 좋은 진료만 하면 환자는 오는 것 아닙니까 · 08 십 년을 벌어도 뭐가 남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3부 · 병원 재건축, 일곱 기둥 관점이 바뀐 다음 병원을 다시 짓는 순서 09 뭘 해도 그때뿐입니다 · 10 병원이 잘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 · 11 어디까지 가야 성공한 겁니까 · 12 직원 네 명에 조직도가 무슨 의미입니까 · 13 좋은 실장만 오면 될 것 같은데 안 옵니다 · 14 요즘 직원들은 주인의식이 없습니다 · 15 광고비만 나가고 신환은 그대로입니다 · 16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병원은 차갑지 않습니까

1부에서 원장님은 내 병원이 그 길의 어디에 서 있는지 처음으로 좌표를 찍게 된다. 2부의 열쇠는 세기의 사업가 한 사람의 이야기로 건넨다. 3부의 재건축은 병원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첫 기둥은 원장님의 인생이다. 왜 그런지는 그 장에서 이야기하겠다.

장마다 끝에는 버릴 생각 하나와 가질 생각 하나가 있다. 병원은 하룻밤에 바뀌지 않지만 원장님 머릿속의 문장은 하룻밤에도 바뀔 수 있다. 그리고 병원은 언제나 원장의 머릿속 문장대로 지어진다.

이 책을 읽는 방법

두 가지만 부탁한다. 첫째, 마음에 걸리는 대목에만 표시를 해두자. 그 걸림들이 원장님 병원의 아픈 곳을 가리키는 침이다. 둘째, 전부 하려고 하지 말자. 장마다 할 일이 나오지만 열여섯 개를 다 하려는 원장은 실패한다. 이유는 뒤에서 다룬다. 목표는 많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책을 덮을 때 딱 하나를 정확히 정하는 것이다. 그 하나가 무엇인지는 마지막 장에서 알려주겠다. 힌트를 주자면 이 책을 덮은 날 밤의 오 분짜리다.

그리고 앞 절반은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진단의 구간이라 그렇다. 아픈 데를 정확히 눌러야 처방이 선다. 뒤로 갈수록 가벼워지고, 마지막에는 처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덮게 되도록 순서를 짰다. 그럼 그동안 가장 많이 받아 온 질문부터 시작하자.

PART
01

꿈이 감옥이 되는 경로

Q01 — Q06
01
QUESTION 01 / 16

개원했는데 페이닥터 때보다 낫다고 말을 못 하겠습니다

이 질문을 보낸 원장님은 개원 사 년 차다. 질문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말을 하면 배부른 소리 같아서 아무한테도 못 했다고.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그동안 받아 온 질문 가운데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들어가며에서 소개한 사라의 첫마디와도 정확히 같은 문장이다. 좋아서 시작했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낫다고 말을 못 하겠다는 것.

왜 말을 못 하고 사는지도 안다. 말할 데가 없어서다. 직원에게는 못 하고, 배우자에게 하면 걱정만 시키고, 동기 모임에서는 다들 잘되는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다들 혼자 생각한다. 나만 이런가. 첫 번째 답은 이것이다. 원장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전부가 그렇다. 그리고 그 이유는 사십 년 전에 이미 밝혀져 있다.

발작을 일으킨 기술자

그 책의 저자는 사십 년 넘게 작은 사업체 수만 곳을 컨설팅했다. 빵집, 세탁소, 정비소, 식당, 그리고 병원까지. 업종은 전부 다른데 무너지는 모양이 똑같았다. 그래서 그 공통 구조를 파고들었고, 가장 먼저 신화 하나를 깼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사업가일 것이라는 신화다.

저자가 수만 명을 만나보니 창업자의 진짜 정체는 따로 있었다. 발작을 일으킨 기술자. 기술자가 어느 날 발작처럼 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내가 이렇게 잘하는데 왜 남의 배를 불려주고 있지. 빵을 잘 굽는 사람이 그 발작으로 빵집을 차리고, 사라가 그 발작으로 파이 가게를 차리고, 진료를 잘하는 의사가 그 발작으로 병원을 차린다.

원장님의 그 순간을 떠올려 보자. 페이닥터 삼사 년 차, 실력이 붙고 환자가 나를 찾기 시작하던 때. 원장의 결정이 답답해 보이기 시작하던 때. 그리고 어느 날 확 올라온 생각. 내 병원이면 이렇게 안 할 텐데. 거의 모든 개원이 이 발작에서 시작된다. 나도 그랬다.

저자가 굳이 발작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그 순간의 성질 때문이다. 첫째, 그것은 계산이 아니라 충동이다. 몇 달 검토한 결론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오는 확신이고, 한번 오면 사라지지 않는다. 둘째, 그 확신은 실력에 관한 것이다. 진료를 잘한다는 확신이지 병원이라는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둘을 같은 것으로 느낀다.

여기에 저자가 말하는 치명적 가정이 숨어 있다. 기술적인 일을 잘하는 사람은 그 일을 하는 사업체도 잘 운영할 것이라는 가정. 너무 자연스러워서 가정인 줄도 모르고 지나가기 때문에 치명적이다. 축구로 바꾸면 바로 보인다. 최고의 선수가 최고의 감독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축구계는 은퇴한 선수에게 지도자 자격을 다시 따게 한다. 개원가는 어떤가. 어제까지 진료하던 사람이 오늘부터 경영자다. 아무도 다시 가르치지 않는다. 게다가 선수로도 계속 뛴다. 뛰면서 감독까지 하는 종목은 세상에 없는데 개원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셋이 한 몸에 들어가서 개원했다

저자의 해부를 한 단계 더 따라가 보자. 개원하던 날, 사실은 세 사람이 함께 개원했다.

누구 하는 일 준비 상태
기술자 진료하는 나 십 년 넘게 훈련받은, 유일하게 준비된 사람
관리자 질서를 만들고 숫자를 보고 사람을 챙기는 나 훈련받은 적 없음
기업가 병원의 미래를 그리는 나 훈련받은 적 없음

개원이란 세 사람 몫의 일을 한 사람이 맡되 그중 한 사람만 준비된 채로 시작하는 게임이다. 세 사람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제대로 다룬다. 여기서는 시작부터 균형이 무너져 있었다는 것만 보자. 준비된 기술자가 하루를 다 가져가고, 준비 안 된 두 사람의 일은 진료가 끝난 밤에 밀려든다. 견적을 보고 컴플레인을 듣고 퇴사 면담을 하고 나면 아홉 시다. 집에 가면서 생각한다. 오늘도 경영은 하나도 못 했네. 아니다. 그 밤에 한 것이 전부 경영이었다. 준비 없이, 지친 몸으로 했을 뿐이다.

그때 본 것은 맞았고 내린 결론이 틀렸다

발작의 순간에는 이 책 내내 쓰일 구분 하나가 숨어 있다. 페이닥터 시절 눈에 들어온 그 병원의 문제들, 부실한 설명과 엉망인 전화 응대와 안일한 케이스 판단. 그 관찰은 정확했다. 문제는 그것을 전부 사람 문제로 읽었다는 것이다. 저 원장이 신경을 안 쓴다, 게으르다, 그러니 내가 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원장님 병원을 보자. 원장님은 신경을 쓰고 게으르지도 않다. 그런데 전화 응대가 매번 같은 수준인가. 원장님이 진료실에 있는 동안에도.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문제가 비슷하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애초에 사람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 원장도 알면서 못 고쳤을 것이다. 고치는 방법을 사람 갈아 넣기밖에 몰랐으니까. 그 원장이 서 있던 자리에 지금 원장님이 서 있다.

개원 준비 목록에 없었던 것

개원 준비 몇 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 복기해 보자. 유동인구와 임대료와 경쟁 병원을 따져 자리를 봤다. 인테리어 견적을 받고 체어 수를 정하고 장비를 고르고 대출을 알아보고 간판과 로고와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반년 가까이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그 목록에 이런 항목이 있었는가. 전화를 어떻게 받을지. 첫 내원 환자에게 어떤 순서로 무엇을 안내할지. 어떤 숫자를 매주 볼지. 직원이 그만두면 그 일을 누가 어떻게 이어받을지. 거의 모든 개원 준비 목록에 이런 항목은 없다. 개원 준비에서 만나는 사람이 전부 자기 물건을 파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병원이 어떻게 굴러갈지를 설계해주는 사람은 그 목록에 없다. 그것은 파는 물건이 아니니까.

그래서 우리는 병원이라는 건물은 준비했어도 병원이라는 조직은 준비한 적이 없다. 개원 첫날, 체어는 최신인데 전화 받는 법은 아무도 모르는 병원이 그렇게 태어난다. 그 빈칸은 원장님이 그때그때 판단하고 알려주는 것으로 메워졌다. 첫 주에는 그게 맞다. 문제는 사 년이 지나도 똑같다는 것이다. 임시로 메운 것이 그대로 굳었다.

붙잡는 일은 병원을 바꾸지 못한다

하루 종일 일했는데 병원이 제자리인 느낌의 구조도 여기서 풀린다. 진료 바깥에서 원장님이 하는 일은 대부분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대응이다. 터진 컴플레인을 막고, 급한 질문에 답하고, 밀린 결재를 처리한다. 대응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쌓이지 않는다. 컴플레인 하나를 아주 잘 처리해도 다음 달에 같은 유형이 사람만 바뀌어 또 온다. 열 번을 잘 처리하면 원장님은 열 번 일한 것이고 병원은 그대로다.

병원을 바꾸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일이다. 그 컴플레인이 왜 반복되는지 보고 그 지점의 절차를 고쳐서 열한 번째가 오지 않게 만드는 일. 이것이 설계다. 원장님 하루에서 대응과 설계의 비율은 아마 백 대 영일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성실한데도 병원이 바뀌지 않는다. 게다가 설계를 안 하면 대응할 일이 늘고, 대응이 늘면 설계할 시간이 더 없어진다. 이 순환이 사 년째 돌고 있다.

낫다고 말을 못 하는 진짜 이유

페이닥터 시절 원장님은 기술자 한 사람이었다. 잘하는 일을 하루 종일 하면 힘들어도 성취가 남는다. 지금은 세 사람이고, 그중 두 사람 몫은 배운 적이 없는 일이다. 사람은 못하는 일을 오래 하면 지치는 것이 아니라 상한다. 자기가 무능하다는 감각이 쌓이기 때문이다. 지금 힘든 것은 일이 많아서만이 아니다. 하루의 절반을 훈련받지 못한 종목으로 뛰고, 그 종목에서 계속 지고 있어서다.

위로가 아니라 진단을 하자면, 원장님은 게으르지 않았다. 오히려 과하게 성실했다. 문제는 출발선이었다. 치대 육 년과 수련 기간 동안 사람 뽑는 법이나 숫자 보는 법을 배운 적이 있는가. 저자가 사십 년 관찰의 결론으로 내놓은 말이 이것이다. 작은 사업체의 실패는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준비의 실패이고, 준비의 실패는 아무도 이 게임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은 탓이다.

그 책에서 나를 한참 앉아 있게 한 대목이 있다. 모든 일이 주인을 거쳐야만 굴러가는 사업이라면, 주인이 가진 것은 사업이 아니라 일자리라는 것.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상사 밑의 일자리. 그 상사는 원장님 자신이다. 주말에 쉬라고 하지 않고, 아파도 나오라고 하고, 매출이 떨어지면 새벽에 깨운다. 페이닥터 시절의 상사는 적어도 퇴근은 시켜줬다. 원장님은 병원을 차린 것이 아니라 일하는 자리를 옮긴 것이고, 옮긴 자리의 상사가 더 지독했던 것이다.

여기서 통역이 필요하다. 병원은 다른 가게와 다르다. 진료는 법적으로 원장만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의 목표는 원장의 자리를 비우는 병원이 아니다. 원장이 아니어도 되는 일들이 원장에게 오지 않는 병원, 원장이 원장의 일만 하는 병원이다. 이 구분은 책 내내 다시 나온다.

여기에 숫자로 잡히지 않는 층이 하나 더 있다. 외로움이다. 페이닥터 시절에는 힘들면 같이 욕하고 밥 먹을 동료가 있었다. 개원하는 순간 그것이 사라진다. 직원은 원장 앞에서 말을 고르고 원장도 직원 앞에서 약한 소리를 못 한다. 그리고 결정의 외로움이 있다. 이제 모든 결정이 원장 몫인데 상의할 사람도 채점해줄 사람도 없다. 이것은 곁가지가 아니라 본론이다. 사람은 외로운 상태에서 배우지 못한다. 혼자 끙끙대는 원장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 실수를 자기 탓으로 쌓는다.

왜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가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자리 잡으면, 대출만 갚으면, 실장만 제대로 들어오면. 실제로는 반대로 간다. 병원이 잘될수록 환자와 직원과 결정할 일이 늘고, 그 늘어난 것이 전부 원장에게 간다. 모든 것이 원장을 통과하도록 지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매출이 두 배가 됐는데 삶은 더 나빠진다. 성장이 보상이 아니라 가중이 된다. 이것은 원장님 병원만의 이상 현상이 아니라 기술자의 발작으로 시작한 모든 사업의 공통 경로이고, 그 경로에는 이름과 단계가 있다. 이 장에서 기초 공사로 세 가지를 확정하면 그 지도가 열린다. 개원은 발작으로 시작됐다는 것, 진료와 경영은 다른 종목이라는 것, 지금의 고통은 준비 없이 던져진 게임의 예정된 결과라는 것.

그래도 진료가 기본 아니냐는 반론

반드시 나오는 반론이다. 맞다, 진료는 기본이다. 나는 진료를 덜 하라거나 대충 하라는 말을 이 책에서 단 한 번도 하지 않는다. 다만 진료 실력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동네에 원장님보다 진료는 못한데 더 잘되는 병원이 있지 않은가. 광고를 세게 해서, 과잉진료라서 그런 곳도 있겠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중에는 진료는 평범한데 진료를 둘러싼 나머지가 정리된 병원이 반드시 섞여 있다.

억울하게 들리지만 뒤집으면 희소식이다. 진료 실력을 지금의 두 배로 올리는 데는 몇 년이 걸리고 어쩌면 불가능하다. 진료 바깥은 몇 달이면 눈에 띄게 달라진다. 원장님은 어려운 쪽을 이미 갖췄고 쉬운 쪽이 비어 있다. 남들과 반대라서 유리한 출발이다.

사라가 파이를 미워하게 된 순서

사라가 파이를 미워하게 된 데에는 순서가 있었다.

  1. 처음에는 파이가 좋았다.
  2. 파이 말고 다른 일들이 늘었다.
  3. 파이 굽는 시간이 그 일들에 밀렸다.
  4. 파이를 구울 때조차 다른 일 생각이 끼어들었다. 그때부터 파이가 싫어졌다.

원장님의 진료는 지금 몇 단계인가. 진료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마음 편하다는 원장님이 많다. 뒤집으면 진료실 밖이 전부 불편하다는 뜻이다. 몇 단계 더 가면 환자 앞에서 발주와 퇴사 면담 생각이 돈다. 거기까지 가면 사라다. 저자는 이것을 작은 사업의 가장 흔한 결말이라고 불렀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그 결말을 피하는 이야기다.

같은 발작, 다른 십 년

저자가 인용하는 미국 통계에 따르면 작은 사업체의 대부분이 오 년 안에 문을 닫고, 살아남은 곳들도 상당수가 그다음 오 년을 넘기지 못한다. 한국 개원가의 폐업률은 그만큼은 아니다. 의료는 수요가 받쳐주니까. 그런데 이것이 좋은 소식만은 아니다. 다른 업종은 이 구조면 망해서 끝나지만 병원은 버텨진다. 잘못 지어진 병원이 문을 닫는 대신 원장을 갈아 넣으며 십 년, 이십 년을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망하는 가게의 주인은 강제로 멈추고 다시 생각하게 되지만, 안 망하는 병원의 원장은 멈출 계기가 없다. 개원가의 비극은 폐업이 아니라 감옥이 그럭저럭 유지된다는 것이다.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발작은 잘못이 아니다. 그 발작이 없었다면 원장님은 지금도 남의 병원에서 답답해하고 있을 것이다. 발작은 출발의 연료였다. 저자도 문제는 발작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아무도 다음 이야기를 해주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자로 출발하는 것은 모두가 같다. 기술자로 몇 년째 머물러 있는 것, 그것이 문제의 전부다.

이 장의 할 일이 하필 하루를 적는 일인 데에도 이유가 있다. 바쁜 사람일수록 자기 하루를 모른다. 특히 삼 분짜리 중단들은 끝나는 순간 증발한다. 느낌으로는 하루 종일 진료만 한 것 같은데 적어보면 진료 사이사이에 다른 일 수십 개가 박혀 있다. 그것들이 에너지를 가져간 범인인데 기억에 남지 않으니 범인 없이 피곤만 남는다. 문진 없이 처방하는 의사는 없다. 그 종이 한 장이 원장님 병원의 첫 문진이고, 다음 장들에서 계속 증거물로 쓰인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으면 바로 이런 반문이 나온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저는 그 두 번째 종목에 재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업가 체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음 장이 그 질문이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진료를 잘하면 병원도 잘된다.
↓
가질 생각진료와 경영은 다른 종목이다. 나는 두 번째 종목을 아직 배운 적이 없다.

버릴 생각은 원장님을 여기까지 데려왔지만 여기서부터는 가두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믿는 한 처방은 진료를 더 잘하기 하나뿐이다. 가질 생각이 해방인 이유는 배운 적 없는 것은 배우면 되기 때문이다. 체질이 아니라 미이수 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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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QUESTION 02 / 16

저는 사업가 체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프레임이 이 장에서 나온다. 질문을 보낸 원장님은 이렇게 썼다. 주변에 사업 수완 좋은 원장들을 보면 저와 다른 인간 같습니다. 숫자도 싫고 사람 관리도 싫고 그냥 진료가 좋습니다. 이런 사람은 페이가 맞았던 걸까요.

체질이라는 말은 문을 닫는 말이다

체질이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그 문제는 내 손을 떠난다. 키가 작은 것을 자책하는 사람은 없듯이, 원래 이렇게 태어났으니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결론이 나고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이 말은 위로이면서 문을 닫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원장님 인생 안에 이미 있다. 처음 기구를 잡던 날 손이 떨렸을 것이다. 그때 나는 진료 체질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는가. 하지 않았다. 배우는 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경영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그 감각이 없어서다.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르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늘고 있는지 잴 방법도 없다.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니 그것이 성격처럼 느껴질 뿐이다. 원장님은 경영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안 배운 사람이다. 그러니 자신 없다는 감각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신호다. 여기가 미이수 과목이라는 신호. 미이수 과목 앞에서 어른이 하는 일은 자책이 아니라 수강 신청이다. 원장님은 어려운 것을 배워낸 경험이 이미 십 년 치 있다.

그 책이 그린 세 사람

내가 그 책에서 딱 하나만 남기라면 남길 프레임이다. 저자는 사업하는 사람 안에 세 사람이 산다고 말한다. 수만 명을 만나보니 예외 없이 셋이 있었다는 관찰이다.

누구 하는 일 사는 시간 사랑하는 것
기업가 삼 년 뒤 병원이 무엇이 될지 그린다 미래 새로운 것
관리자 절차를 정하고 숫자를 보고 사람을 배치한다 과거 예측 가능성
기술자 손으로 일한다. 원장에게는 진료 현재 일 그 자체

건강한 사업은 이 셋의 균형 위에 선다. 그런데 저자가 본 전형적인 작은 사업 오너의 내면 지분은 기업가 10퍼센트, 관리자 20퍼센트, 기술자 70퍼센트다. 원장은 더 극단적이라고 나는 본다. 다른 기술자들은 삼사 년 배우고 창업하지만 원장은 십 년 넘게 기술만 깊이 배웠다. 1장의 하루 기록에 세 사람을 표시해 보면 대부분 기술자 여덟 시간, 관리자 삼십 분, 기업가 영이 나온다. 그 삼십 분도 터진 일의 대응이었을 것이다. 이 비율이 매출보다 병원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한다. 아무도 미래를 그리지 않고 질서를 만들지 않은 하루가 삼 년 쌓이면, 삼 년 뒤에도 오늘과 같은 하루가 남는다.

같은 예약 명단도 세 사람은 다르게 본다. 기술자는 오늘의 어려운 케이스를 보고, 관리자는 빈 시간과 지난주 같은 요일과의 차이를 보고, 기업가는 키우려는 진료가 늘고 있는지를 본다. 원장님은 거의 백 퍼센트 첫 번째 눈으로 본다. 나머지 두 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십 년 동안 안 써서 감겨 있다.

셋은 서로를 방해한다

기업가가 새 일을 벌이면 관리자가 골치 아파하고, 관리자가 절차를 만들면 기술자가 답답해하고, 기술자가 일에 몰두하면 나머지 둘이 사라진다. 이 전쟁에서 거의 매일 기술자가 이긴다. 기술자만 훈련받았고 기술자만 즉각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진료는 그날 결과가 나오지만 관리의 일은 석 달 뒤, 기업가의 일은 삼 년 뒤에나 티가 난다.

그래서 가장 먼저 굶어 죽는 것이 관리자다. 즉각 보상이 없고, 안 해도 오늘은 아무 일이 없고, 배운 적이 없어서 앉아도 무엇을 할지 모른다. 내버려두면 의지가 강한 원장도 예외 없이 굶긴다. 그래서 관리자에게는 달력에 박힌 보호 구역이 필요하다. 관리의 성과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안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도 알아두자. 컴플레인이 안 터지고 직원이 안 나가고 재료가 안 떨어지는 것. 관리를 잘할수록 병원은 조용해지고, 그 조용함이 성과다.

가운데가 비면 병원은 진동한다

관리자가 굶은 병원에서는 이런 일이 반복된다. 기술자로 살다가 답답함이 차오르면 기업가가 깨어나 광고를 늘리고 장비를 들이고 새 진료를 시작한다. 그런데 벌인 일을 받아줄 관리자가 없으니 그 일들은 원장 몸으로 돌아온다. 감당이 안 되면 접고 진료실로 돌아간다. 몇 달 뒤 또 벌이고 또 접는다. 이 진자운동을 몇 년 반복한 원장이 내리는 결론이 이 장의 질문이다. 나는 사업가 체질이 아니구나.

이 진동은 비싸다. 청구서가 세 장이다. 회수 전에 접은 시작들이 창고와 통장에 쌓인다. 직원들은 이번 일도 접힐 것을 학습하고 몸을 싣지 않으며, 그래서 정말로 접힌다. 가장 비싼 것은 원장이 자기 결심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세 장 모두 관리자 부재의 청구서다.

체질이 아니라 지분이다

원장님이 사업가 체질이 아니라고 느끼는 이유는 안에 기업가와 관리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십 년 동안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해서다. 그러니 진단을 바꾸자.

구분 체질이라는 진단 지분이라는 진단
처방 없다. 사업가 체질의 배우자나 실장을 찾는 복권뿐 있다. 시간 배분으로 바꾼다
바꾸는 곳 성격 달력

이 벽은 의사만의 것이 아니다. 로펌을 여는 변호사, 식당을 여는 셰프도 같은 벽을 만난다. 잘된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 정체성을 갈아탔다. 미쉐린 별을 유지하는 식당 중에 셰프가 모든 접시를 직접 만드는 곳은 없다. 그 맛이 나오는 주방을 설계하고 지킨다. 갈아타기의 고비는 내가 하면 백 점인데 남이 하는 칠십 점을 지켜보는 시기다. 실력이 아니라 정체성의 고비다.

부러워한 수완 좋은 원장들도 가까이서 보면 두 부류다. 진짜는 심심해 보인다. 매주 같은 시간에 숫자를 보고, 벌이는 일은 적어도 벌인 일은 끝을 본다. 다른 부류는 기업가만 크다. 신사업과 방송 이야기로 화려한데 안을 보면 벌인 일이 무너지고 직원이 계속 바뀐다. 배울 대상은 조용히 리듬을 지키는 쪽이다.

기술자 지분이 큰 원장은 경영 문제도 기술로 푼다. 매출이 정체되면 새 술식을 배우고, 상담이 안 되면 설명 자료를 다듬고, 환자가 줄면 장비를 들인다. 그런데 원인이 소개가 안 도는 것, 비용 이야기의 순서, 전화 응대에서 새는 것이었다면 실력만 늘고 문제는 그대로다. 문제를 만나면 먼저 묻자. 이것은 기술의 문제인가 구조의 문제인가.

성격을 고치지 말고 달력을 고쳐라

이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을 고쳐먹으려 하고, 사흘 뒤 원래대로 돌아온다. 십 년 훈련된 기술자는 결심 한 번으로 물러나지 않는다. 저자의 처방은 시간이다. 관리자에게는 매주 반나절, 처음에는 두 시간부터라도 같은 요일 같은 시각에 진료를 막고 병원 자체를 진료하는 시간을 준다. 기업가에게는 분기에 한 번 반나절을 주되 병원 밖에서 쓴다. 병원 안에서는 오늘의 문제만 보이기 때문이다. 질문 세 개만 들고 앉는다. 삼 년 뒤 우리 병원은 무엇이 달라져 있어야 하는가, 지금 하는 것 중 그만둘 것은 무엇인가, 안 하는 것 중 시작할 것은 무엇인가. 기업가가 방향을 정하고 관리자가 매주 지키고 기술자가 매일 실행하면 전쟁이 분업이 된다. 기술자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칠십을 예순으로만 내려도 병원이 달라진다.

이 프레임은 알아두는 것만으로 일한다. 크게 벌이고 싶은 충동이 오면 기업가가 올라왔다는 것이 보이고, 받아줄 관리는 준비됐는가라는 검문소가 선다. 진료에 파묻혀 일주일을 보낸 뒤에는 이번 주 관리자 출전이 영이었다는 것이 보이고, 그 인식이 다음 주 달력을 바꾼다. 상태에 이름이 붙는 순간 선택이 생긴다.

배우자가 함께 병원을 꾸리는 구조는 기술자와 관리자를 두 사람이 나눈 자연스러운 해법이라 안정적인 경우가 많다. 다만 관리가 그 사람 머릿속에만 있지 않은지, 둘 다 바빠서 기업가 자리가 비어 있지 않은지는 점검하자. 관리를 문서로 옮기고 두 사람이 함께 기업가의 시간을 따로 잡는 것이 과제다.

관리자 체질인 사람을 뽑으면 되지 않느냐는 우회로도 있다. 순서 위반이다. 원장 안의 관리자가 먼저 서야 남의 관리를 맡기고 평가할 수 있다.

원장의 답과 사업자의 답이 다를 때

세 사람 이야기에 반드시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원장으로서의 답과 사업자로서의 답이 다를 때 무엇을 따르는가. 원장의 답은 눈앞의 환자에게 최선을 말하는 기술자의 목소리이고, 사업자의 답은 병원의 생존을 말하는 기업가의 목소리다. 둘 다 맞으니 괴롭다. 이 싸움에 빠진 사람은 기준을 꺼내 중재할 관리자다. 중재자가 없으니 그날 큰 목소리가 이기고 결정의 일관성이 사라진다.

한 겹 더 벗기면 대부분은 지금 유리한 것과 나중에 유리한 것의 대립이다. 반값 이벤트, 안 해도 되는 치료 권하기, 문제 직원 두기는 모두 지금 유리하고 나중에 불리하다. 진짜 사업가가 보는 것은 십 년 뒤에도 이 병원이 있느냐이고, 그 조건은 환자가 다시 오고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신뢰를 깎아 버는 돈에 사업자라는 이름을 붙이지 말자. 원장의 양심과 사업은 같은 편이고 반대편에 있는 것은 조급함이다. 저자는 기준 없는 사업은 오너의 기분을 닮아간다고 했다. 원장의 기분이 기준이 된 병원에서는 전 직원이 기상청이 된다.

몇 달째 못 정하는 것도 결정이다. 미룸은 현상 유지에 던지는 표이고, 그 몇 달 동안 다른 직원들이 겪은 것이 값이다. 미룸은 대개 정보가 아니라 확신을 기다리는데 확신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미결 사항을 종이에 전부 꺼내고 각각에 결정 날짜를 붙이자. 무엇을 따를지는 후회의 방향이 알려준다. 장기를 챙겨서 후회한 결정은 거의 없고 후회는 단기를 고른 쪽에 쌓여 있다.

기준 세 줄이 하는 일

진짜로 갈리는 순간도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미리 정한 기준이다. 우리는 어떤 환자를 보는가, 돈이 되더라도 안 하는 것은 무엇인가, 손해를 보더라도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가 사업의 규칙이라 부른 것이고, 액자 문구가 아니라 결정을 대신해주는 장치다. 기준은 지난 일 년의 걸림에서 뽑는다. 대안을 다 설명하지 않고 권하는 것이 걸렸다면 기준은 이렇게 나온다. 우리는 모든 선택지를 설명하기 전에는 권하지 않는다. 치료가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급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뽑지 않는다 같은 문장도 있다. 짧아야 결정의 순간에 소환된다.

반대쪽 함정도 있다. 좋은 진료만 하면 환자가 온다며 알리지 않고, 돈 이야기가 속물 같다며 가격을 십 년째 두는 것. 양심이라는 이름이 붙은 회피다. 알리지 않으면 그 진료를 받을 수 있었던 환자가 다른 데로 가고, 재료비와 인건비가 오르는데 가격이 그대로면 시간이든 재료든 원장의 몸이든 어딘가가 보이지 않게 깎인다. 사업자의 이름으로 장기를 팔지 말고, 원장의 이름으로 기본을 피하지도 말자.

이 갈등이 매일 드러나는 현장이 상담실이다. 비용 이야기에서 말이 빨라지는 의사를 보면 환자는 이 치료가 그만한 값어치가 없나 느낀다. 이 재료와 이 시간과 이 사후 관리가 들어가서 이 값이라는 논리가 서 있으면 흥정이 아니라 설명이 된다. 가격의 논리를 세우는 사업자의 일이 원장의 상담을 편하게 만든다. 옆 병원 반값을 따라가는 것은 장기를 팔아 단기를 사는 거래다. 이익률이 깎이고, 가격 보고 온 환자는 가격 보고 떠나고, 어제까지 이 값이던 진료가 반값이 되면 환자는 그동안 바가지였거나 뭔가를 뺀다고 읽는다. 가격을 지키는 힘은 응대와 설명과 사후 관리의 다름에서 나온다.

기준은 직원에게 더 필요하다. 원장의 기준이 오락가락하면 잘하려는 직원이 가장 힘들고, 상담실의 실장은 매번 자기 감으로 정한다. 선이 명확하면 선 안쪽이 자유로워진다. 직원과 나눌 때는 선언이 아니라 사례로 시작하고, 현장에서 곤란할 상황이 있는지 묻고, 첫 적용 사례를 짚어 인정하자. 세 줄은 면접에서 맞는 사람을 거르고, 상담에 확신을 주고, 원장의 밤에서 뒤척임을 덜어낸다. 갈등이 사라지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원장의 목소리만 있으면 착하게 망하고 사업자의 목소리만 있으면 나쁘게 망한다. 같은 갈림길을 두 번 고민하지 않는 것, 그것이 경영자의 결정 습관이다. 이 이야기를 앞에 둔 이유도 같다. 뒤에서 지을 절차와 시스템이 모두 이 세 줄에서 자란다.

다음 갈림길에서는 이 순서를 쓰자.

  1. 이름부터 붙인다. 진짜 갈등인가, 단기의 유혹이 사업자 흉내를 내는 것인가.
  2. 진짜 갈등이면 세 줄에 걸리는지 본다.
  3. 기준에 없는 새 유형이면 묻는다. 오 년 뒤의 나는 어느 쪽을 골랐기를 바랄까.
  4. 정했으면 기준집에 한 줄을 더하고 덮는다.

여기까지가 원장 안쪽의 세 사람 이야기다. 오늘 밤 배우자에게 이 프레임을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다. 지난 몇 년을 설명할 언어가 되고, 말로 꺼낸 것은 관점이 된다. 다음 장부터는 이 불균형이 병원에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지, 사업의 나이라는 지도로 살펴본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나는 사업가 체질이 아니다.
↓
가질 생각체질이 아니라 비어 있는 자리다. 자리는 달력으로 채운다.

원장과 사업자는 애초에 싸우는 사이가 아니다. 원장으로서 지킬 것을 먼저 정하고, 그것을 지킬 구조를 사업자로서 만드는 순서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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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QUESTION 03 / 16

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돌아갑니다. 개원 초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 질문을 보낸 원장님은 개원 팔 개월 차다. 모든 게 저를 거쳐야 돌아가는데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개원 초니까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고 썼다. 흥미롭게도 거의 같은 문장의 사연이 하나 더 있었다. 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돌아갑니다. 이쪽은 개원 칠 년 차였다. 팔 개월 차와 칠 년 차가 같은 문장을 쓰고 있다. 이 장의 답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사업에도 나이가 있다

그 책에서 내가 무릎을 쳤던 프레임이 있다. 저자는 사업을 살아 있는 것으로 보고, 사업에도 나이가 있다고 말한다.

  1. 유아기. 오너가 곧 사업인 시기. 모든 사업이 여기서 시작한다. 이 장의 이야기다.
  2. 사춘기. 사람을 뽑으며 도움을 구하기 시작하는 시기. 4장과 5장에서 다룬다.
  3. 성숙기. 사춘기를 제대로 통과해야 열리는 문. 6장에서 다룬다.

사람의 나이와 같은 점은 나이마다 겪어야 할 과업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사업의 나이는 시간이 지나도 저절로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어른이 되지만 사업은 가만히 있으면 영원히 유아기다. 달력의 나이와 구조의 나이가 따로 간다. 개원 칠 년 차인데 구조는 팔 개월 차와 같은 병원이 그래서 존재한다. 이 장을 읽으며 내 병원의 구조 나이를 찍어 보자.

유아기, 주인이 곧 가게인 시기

저자가 그리는 유아기의 풍경은 이렇다. 가게 문을 주인이 열고 주인이 닫는다. 주인이 만들고 팔고 계산하고 청소한다. 손님은 가게가 아니라 주인을 보고 온다. 주인이 아프면 가게도 아프다. 개원 초의 병원 그대로다. 원장이 진료하고 상담하고 마감을 확인한다. 직원이 서너 명 있어도 모든 결정이 원장을 통과한다.

그런데 저자는 뜻밖의 말을 한다. 유아기는 문제가 아니며 심지어 필요하다고. 이 시기에 오너는 사업의 모든 부분을 몸으로 배운다. 원장님이 전화 응대의 문제를 아는 것은 직접 받아봤기 때문이고, 상담의 어려움을 아는 것은 직접 해봤기 때문이다. 이 몸의 지식이 나중에 병원을 설계할 때 전부 재료가 된다. 그러니 팔 개월 차 원장님께 드리는 답의 절반은 이것이다. 당연하다. 지금은 유아기가 맞고 유아기는 죄가 아니다. 문제는 나머지 절반이다.

여기서 이 책 내내 유지할 경계선을 긋는다. 제가 없으면 안 돌아간다는 목록에서 진료는 예외다. 진료는 원장만 할 수 있고, 그래야 맞다. 우리가 줄이려는 것은 진료가 아니라 진료가 아닌 것들이다. 발주 확인, 예외 승인, 반복 질문, 자잘한 중재처럼 원장이 아니어도 되는데 원장을 통과하고 있는 것들. 목표는 원장이 원장의 일만 하는 병원이다. 진료와 판단과 방향에는 온전히 있고 나머지에는 붙들리지 않는 병원. 유아기 졸업이란 원장이 병원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원장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유아기의 수학

유아기는 달콤하다. 병원의 모든 일이 내 눈과 손 안에 있고 모두가 나를 찾는다.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간다는 말은 반쯤 자부심이다. 힘들지만 이상하게 뿌듯한 시기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잔인한 수학이 깔려 있다. 매출도 결정도 품질도 원장에게서 나오니, 병원이 클 수 있는 최대치는 원장의 하루 스물네 시간과 체력 백 퍼센트까지다.

유아기 병원의 천장 = 원장의 체력 × 원장의 시간

그래서 유아기 병원의 성장은 반드시 원장의 노동 증가로 나타난다. 환자가 늘면 원장이 더 뛰고 매출이 늘면 퇴근이 늦어진다. 1장에서 본, 성장이 해방이 아니라 가중이 되는 문장의 정체가 이 수학이다. 이 수학의 끝에는 벽이 있다. 저자는 오너가 자기 한계를 만나는 날 유아기가 끝난다고 말한다.

세 사람의 언어로 바꾸면 정의가 더 선명해진다. 유아기란 기술자가 혼자 뛰는 시기다. 관리자와 기업가는 아직 벤치에도 없다. 그러니 유아기 졸업이란 병원에 관리자의 기능이 태어나는 것이다. 원장 안의 관리자가 출전을 시작하고, 기준과 기록이 생기고, 반복 업무가 원장의 머리 밖으로 나오는 것. 유아기에 갇힌 칠 년 차 병원은 칠 년 동안 기술자만 뛴 병원이다. 관리자는 시간이 아니라 결단으로 태어난다.

유아기의 끝은 몸이 알려준다

그 한계의 날은 대개 사건이 아니라 증상으로 온다. 아침에 병원 가기가 처음으로 싫었던 날. 진료 중에 이유 없이 화가 올라온 날. 주말 내내 잤는데도 월요일이 무거운 날. 건강검진 숫자 몇 개가 나빠진 날. 가족이 요즘 왜 그러냐고 물은 날. 원장들은 이 신호를 대부분 더 버티는 것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이것은 게으름의 신호가 아니라 원장의 몸이라는 담보로 버티던 구조가 만기에 도달했다는 신호다.

저자는 이 지점을 첫 번째 갈림길이라 부른다. 문을 닫거나, 다시 작아지거나, 다음 나이로 크거나. 병원은 수요가 받쳐주는 업이라 문을 닫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니 개원가의 선택지는 사실상 줄이거나 크거나 둘이고, 그 두 갈래가 4장과 5장이다. 지금 이 증상 한가운데 있다면 이 책을 제때 펼친 것이다.

그 자부심이 천장이 된다

유아기의 원장은 다 하는 것을 책임감이라고 느낀다. 마음은 책임감이 맞다. 그런데 결과는 다르다. 원장이 다 하는 병원에서 직원은 판단하지 않게 된다. 어차피 원장이 다시 보고 정할 테니 사소한 것까지 묻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러면 원장은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확신하고 더 다 한다. 직원은 더 판단하지 않는다. 오 년을 돌면 오 년 치 경험이 원장 머릿속에만 쌓이고, 직원들의 오 년은 시킨 일을 한 오 년이지 판단을 쌓은 오 년이 아니다.

내가 다 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책임감이고 장기적으로는 병원의 천장이다. 아프게 말하면,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가는 병원은 내가 그렇게 지어온 병원이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 최선의 의도로. 매일의 헌신이 쌓여 만든 감옥이라 원장이 가장 알아채기 어렵다.

하루 스무 번의 호출

진료 중에 잠깐만요 하고 불려 나가 답하는 데 삼십 초. 그런데 비용은 삼십 초가 아니다. 집중은 스위치가 아니라 엔진이라서 끊긴 집중이 원래 깊이로 돌아오는 데 몇 분이 걸린다.

항목 비용
한 번 응답 삼십 초
집중 복귀 몇 분. 주차권 문제에서 다시 근관으로
하루 스무 번, 응답 십 분
하루 스무 번, 복귀 한 시간 넘게

더 큰 비용은 하루가 잘게 부서지는 것이다. 병원을 어떻게 바꿀지 같은 생각은 삼십 분 덩어리가 있어야 굴러가는데 그 덩어리가 하루에 한 번도 생기지 않는다. 이유 없이 탈진한 저녁은 진료가 많았던 날보다 중단이 많았던 날일 가능성이 크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은 일의 양보다 전환의 횟수다.

유아기 원장의 오전을 느리게 돌려 보면 이렇다. 아홉 시 진료 시작, 아홉 시 십오 분 예약 변경 문의, 아홉 시 사십 분 재료 업체 답변 요청, 열 시 이십 분 신입의 서류 위치 질문, 열한 시 대기가 밀린다는 데스크의 재촉, 열한 시 반 검진 결과 설명 도중 넘어온 전화. 병원의 본업인 진료가 잡무 틈새에서 이뤄진다. 이것은 바쁜 것이 아니라 설계가 없는 것이다. 바쁨은 일이 많은 상태고 이것은 일이 뒤섞인 상태다. 뒤섞임은 일을 줄이지 않아도 풀 수 있다.

직원들이 물어보는 진짜 이유

직원 탓으로 가면 안 된다. 사소한 것까지 묻는 이유는 세 겹이다. 첫째, 기준이 없다. 환불해도 되는지, 예약을 바꿔줘도 되는지 정해진 답이 없으니 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다. 둘째, 권한이 없다. 이건 제가 정해도 되나요라는 물음이 모든 물음 밑에 깔려 있다. 셋째, 원장이 즉답을 해준다. 물으면 항상 답이 나오는 시스템을 원장이 십 년째 운영해 온 것이다. 스무 번의 호출은 직원의 무능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다. 기준을 만들고 권한을 정하면 대부분 사라진다. 방법은 3부에서 다룬다. 지금은 원인의 위치만 직원에게서 구조로 옮겨두자.

마음의 문제도 정직하게 말해야겠다. 모두가 나를 찾는 상태는 고되지만 달콤하다. 그래서 유아기 원장은 이중생활을 한다. 입으로는 그만 찾으라고 하면서 몸은 모든 호출에 즉시 응답하고, 직원이 알아서 처리한 일을 발견하면 왜 말 안 했냐고 한다. 나도 그랬다. 다만 이름은 붙여두자. 필요받는 느낌과 병원이 잘되는 것은 다르다. 진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길은 병원의 기준과 방향을 만드는 것이다. 그 일을 하는 원장은 호출당하지 않아도 병원의 중심이다.

가족과 환자도 유아기를 같이 산다

유아기 원장에게는 저녁이 없고, 그 없는 저녁을 가족이 같이 산다. 몸은 식탁에 있는데 머리는 오늘의 컴플레인과 내일의 스케줄에 가 있다. 유아기 졸업의 동기를 매출에서 찾으면 힘이 약하다. 매출은 지금도 나오니까. 진짜 동기는 이 질문에서 나온다. 이 하루를 몇 년 더 반복할 것인가. 그 반복을 가족이 몇 년 더 견디게 할 것인가.

환자가 병원이 아니라 원장을 보고 오는 것도 유아기의 특징이다. 개원 초에는 병원을 살리는 힘이다. 그런데 굳으면 페이 원장을 들여도 환자가 옮겨가지 않고, 원장 예약만 몇 주씩 밀리고, 학회 가는 날은 예약이 잡히지 않는다. 병원이 환자에게 원장 말고는 믿을 근거를 준 적이 없어서다. 진료 철학, 일관된 시스템, 누구를 만나도 같은 기준이 보이면 환자는 병원을 믿는다. 원장만 찾는 환자가 많다는 것은 원장의 실력 증명이면서 병원의 미완성 증명이다.

팔 개월 차와 칠 년 차의 갈림길

팔 개월 차 원장님, 지금의 올인은 정상이다. 다만 몸으로 배우는 경험을 머릿속에만 쌓지 말고 기록으로 쌓자. 전화는 이렇게 받는 게 낫더라, 이 안내는 이 순서가 낫더라. 한 줄씩이면 된다. 유아기를 짧게 지나가는 병원은 경험과 기록을 같이 쌓는다. 같은 삼 년을 보내도 한쪽은 원장 머릿속에 삼 년이 쌓이고 한쪽은 병원에 삼 년이 쌓인다.

칠 년 차 원장님의 병원은 유아기가 아니라 유아기에 갇힌 것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하나는 계절이고 하나는 고착이다. 구분법은 그 문장을 말할 때의 기분이다. 팔 개월 차에게 그 문장은 힘들지만 자연스럽고, 칠 년 차에게는 지긋지긋하다. 지긋지긋한데도 그대로라면 시기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그러니 언제까지가 당연한가. 시간으로 답하면 틀리고 행동으로 답해야 맞다. 모든 것을 직접 하면서 그냥 하는 원장의 유아기는 소비되고, 직접 하면서 이 일을 나중에 누가 어떻게 하게 될지 적는 원장의 유아기는 투자된다. 직접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직접만 하는 것이 문제다. 손은 유아기를 살아도 눈은 다음 나이를 보고 있어야 한다.

하소연에서 측정으로

지금까지 원장님은 제가 없으면 안 돌아갑니다를 하소연이나 자부심으로 말해왔다. 이제 그 문장은 측정값이 된다. 하루 몇 번 호출되는지, 무엇이 나를 통과해야만 돌아가는지. 재면 줄일 수 있고 줄이면 병원이 나이를 먹기 시작한다.

이 프레임을 처음 들은 원장님들은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고 말한다. 이름이 없을 때 해석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 하나뿐이다. 유아기라는 이름이 붙으면 이것은 실패 상태가 아니라 모든 병원이 지나가는 발달 단계가 된다. 자책하는 사람은 문제를 숨기고 진단받은 사람은 문제를 다룬다. 병명이 나왔으니 치료 계획으로 가면 된다.

유아기의 벽 앞에서 원장들은 거의 전부 같은 처방을 쓴다. 사람을 뽑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연이 있었다. 직원이 늘었는데 제 일은 안 줄었습니다. 다음 장, 사업의 사춘기 이야기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내가 다 하는 것이 책임감이다.
↓
가질 생각내가 다 하는 것이 병원의 천장이다. 진짜 책임감은 내가 없어도 지켜지는 기준을 만드는 것.
이번 주에 할 것 · 해낸 것은 눌러 표시하세요
04
QUESTION 04 / 16

직원이 늘었는데 제 일은 안 줄었습니다

사업의 두 번째 나이, 사춘기 이야기다. 사연 전문은 이렇다. 개원 때 셋이던 직원이 지금 일곱입니다. 그런데 제 퇴근은 그대로거나 더 늦어졌습니다. 인건비는 두 배가 넘게 늘었는데 제 삶은 왜 그대로입니까.

사람을 뽑을 때 우리는 분명히 어떤 거래를 기대했다. 월급을 주는 대신 내 시간을 돌려받는 거래. 월급은 꼬박꼬박 나가는데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디서 계산이 틀렸을까.

사춘기, 그리고 떠넘기기

그 책은 유아기의 벽에 부딪힌 오너가 사람을 뽑는 순간부터를 사춘기라고 부른다. 도움을 구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그리고 저자는 사춘기 오너가 거의 예외 없이 저지르는 실수를 짚는다. 위임이 아니라 떠넘기기. 관리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관리를 내다 버리는 것이다.

장면은 이렇다. 잡무에 시달리던 오너가 드디어 경험 있는 직원을 뽑는다. 병원이라면 경력 실장이다. 오너는 속으로 외친다. 드디어 해방이다. 그러고는 그 업무 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잘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도 없이 사람에게 던진 것이다. 알아서 잘해주겠지.

그다음 경로는 정해져 있다. 직원은 자기 방식으로 일하고, 처음에는 굴러간다. 어느 날 숫자가 안 맞거나 컴플레인이 오거나 직원들끼리 얽히는 문제가 터진다. 오너는 놀라서 들여다보고, 그동안 쌓인 것을 발견하고, 분노하고, 도로 다 가져온다. 역시 내가 해야 돼. 이것이 사춘기의 회수다. 떠넘기기와 회수를 몇 바퀴 돌면 오너에게 신념이 생긴다.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 진실은 반대다. 맡길 만하게 넘긴 적이 없는 것이다.

일손과 일은 다르다

직원이 늘었는데 일이 줄지 않는 이유는 산수의 문제다. 사람을 뽑으며 늘린 것은 일손이다. 그런데 일손이 늘면 자동으로 따라 느는 것들이 있다. 가르칠 일, 관리할 사람, 사람 사이의 조율. 셋일 때는 얽힐 일이 세 갈래인데 일곱이면 스무 갈래가 넘는다. 그 전부를 원장이 한다. 기준과 구조 없이 사람만 늘리면 실무는 조금 줄고 교육과 관리와 조율은 크게 늘어 합계는 그대로거나 증가한다. 질문한 원장님의 계산이 정확했다. 틀린 것은 계산이 아니라 늘린 품목이다.

일을 넘긴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 일의 기준과 권한과 확인 방법이 함께 넘어가야 일이 넘어간 것이다. 잘된 상태가 무엇인지, 어디까지 알아서 해도 되는지, 언제 어떻게 점검하는지. 이 세 가지 없이 넘긴 일은 전부 부메랑이다. 언젠가 문제가 커진 채로 원장에게 돌아온다.

병원 사춘기의 실제 장면들

장면 무슨 일이 있었나 빠진 것
경력 실장에게 상담을 통째로 석 달 뒤 보니 우리 병원 철학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상담하고 있었다. 원장이 큰 상담을 다시 직접 한다 우리 병원 상담이 어때야 하는지
데스크에 예약 관리를 예약 간격이 뒤죽박죽이라 매일 오후가 밀린다. 환자가 원하는 시간에 다 맞춰주는 게 잘하는 건 줄 알았다 예약 규칙
막내에게 재료 발주를 어느 날 수술 재료가 없다. 원장은 화를 냈고 막내는 울었고 발주는 다시 원장 카톡을 거친다 발주 기준과 확인

세 장면 모두 사람은 있었는데 기준이 없었다. 실장은 전 병원의 최선을 했을 뿐이고, 데스크의 친절이 병원을 밀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고 후 처방은 전부 기준 만들기가 아니라 회수였다. 그래서 병원은 사고 전보다 더 유아기로 돌아간다. 사춘기의 실패는 병원을 거꾸로 어리게 만든다.

뿌리를 하나 더 파면 채용의 순서가 나온다. 우리는 일이 넘치면 뽑고, 들어오면 그때그때 급한 일을 시킨다. 몇 달 뒤 그 사람의 업무는 어쩌다 맡게 된 일들의 무더기가 된다. 순서가 반대여야 한다. 이 자리가 무엇을 책임지고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지 먼저 그리고 사람을 뽑는다. 자리 없이 뽑은 사람은 일손이고 자리에 앉힌 사람은 담당자다. 일손은 지시를 기다리고 담당자는 자기 자리의 결과를 만든다. 일곱 명이 전부 일손인 병원보다 네 명이 전부 담당자인 병원에서 원장의 일이 적다.

지시, 위임, 방임

이 세 단어의 구분이 서면 사춘기의 절반은 졸업이다.

구분 무엇을 주나 예
지시 방법까지 정해준다 이대로 하세요. 신입에게 맞다
위임 결과와 범위를 정하고 방법은 맡긴다 이 상태가 되면 됩니다. 여기까지는 알아서 정하세요. 매주 이렇게 확인할게요
방임 결과도 범위도 확인도 없다 알아서 해주세요

사춘기 오너의 떠넘기기는 방임인데 본인은 그것을 위임이라 부른다. 믿고 맡겼다고. 사고가 나면 믿었는데 배신당했다고 말한다. 직원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기준을 받은 적이 없으니 자기 기준으로 했을 뿐이다. 방임해 놓고 결과만 채점한 것이다. 사람 탓이면 답은 더 좋은 사람 찾기라는 복권뿐이지만, 방식 탓이면 방식을 고치면 된다. 복권은 못 배워도 기술은 배울 수 있다.

좋은 실장을 만난 병원에도 사춘기가 있다. 제일 잘하는 사람에게 새 일이 계속 얹혀, 오 년 뒤 그 실장은 서로 무관한 일 예닐곱 개를 문서 없이 머릿속에만 지고 있다. 유아기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을 바꾼 것이다. 원장 의존이 실장 의존이 됐을 뿐이고, 그 실장이 결혼하고 출산하고 이사 가는 순간 병원은 유아기로 강제 소환된다. 지금의 편안함이 구조인지 사람인지 묻자. 실장이 잘할 때, 관계가 좋을 때가 그 일들을 자리와 문서로 나눠둘 적기다.

받는 사람의 계산서

직원 쪽 계산서도 봐야 완성이다. 맡으면 일이 늘고 책임이 생기고 틀리면 혼난다. 잘하면 아무것도 없다. 이 계산서라면 안 맡는 것이 합리적이다. 책임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피하는 것이다. 그러니 넘길 때 계산서를 같이 바꿔야 한다. 맡는 대신 다른 일을 덜어주자. 총량이 늘지 않으면 저항이 확 준다. 결정권을 정말로 주자. 일만 주고 결정은 원장이 하면 책임만 늘어난 것이다. 잘했을 때 아는 티를 내자. 그 일 덕분에 병원이 이만큼 편해졌다고 연봉 협상 때 언급하는 식으로. 계산서가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칠십 점을 견디는 법

사춘기의 진짜 고비는 넘긴 다음이다. 내가 하면 십 분인데 직원이 한 시간째 헤매고, 결과는 내 기준의 칠십 점이다. 목까지 올라오는 말이 있다. 이리 줘요, 내가 할게요. 그 말을 삼키는 것이 사춘기 졸업 시험이다. 그 말이 나가면 직원은 배울 기회를 잃고, 어차피 원장이 다시 가져간다는 것을 배운다. 원장의 회수가 직원의 최선을 회수해 간다.

구조 안의 칠십 점은 반복되며 팔십 점, 구십 점이 된다. 원장의 백 점은 원장이 지치면 팔십 점으로 내려간다. 올라가는 칠십 점과 내려가는 백 점은 몇 달이면 교차한다. 단, 기준과 확인이 있는 칠십 점만 올라간다. 견디기 전에 먼저 확인하자. 나는 위임하고 견디는 중인가, 방임하고 방치하는 중인가.

첫 위임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판이다. 첫 판이 지면 원장은 역시 안 된다는 것을, 직원들은 어차피 회수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기는 판의 조건은 다섯이다.

  1. 받는 사람이 그 일에 관심이 있다. 시키지 않아도 정리하고 왜냐고 묻는 사람이 첫 후보다.
  2. 결과가 몇 주 안에 보인다.
  3. 재고나 리콜처럼 실패해도 복구된다.
  4. 맨손이 아니라 기준을 적은 문서 한 장과 함께 넘긴다.
  5. 언제부터 맡고 언제 같이 볼지 날짜가 있다.

가르칠 시간이 없다는 반론도 있다. 넘기려면 가르쳐야 하고, 가르칠 시간이 없는 것은 그 일을 내가 다 하고 있어서이고, 다 하는 것은 안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 순환은 저절로 끊어지지 않는다. 언젠가 한가해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끊는 방법은 손해를 한 번 인정하는 것뿐이다. 이번 달에 두 시간을 내서 가르치면 다음 달부터 그 일이 달력에서 사라진다. 두 시간을 넣고 매주 한 시간을 영구히 돌려받는 계산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사춘기 졸업의 신호다.

미루면 후유증이 남는다. 시켰다가 회수하기를 반복한 병원의 직원은 판단하지 말자는 것을 학습한다. 삼 년 경력인데 판단 경험은 석 달 치도 안 되는 직원에게 이제 좀 알아서 하라고 하면 못 한다. 삼 년 동안 알아서 하지 않는 훈련을 받았으니까. 오 년 뒤 직원들의 차이는 재능이 아니라 이력의 차이다.

인건비 계산이 맞으려면

인건비를 비용으로만 보면 계산은 영원히 맞지 않는다. 사람이 아니라 자리에 돈을 써야 한다. 이 자리가 무엇을 책임지고 원장의 주당 몇 시간을 돌려주는지 정의된 채용은 투자 계산이 된다. 자리 없는 채용은 계산 자체가 안 되니 월급만 보이고, 뽑는 게 무서워 급할 때까지 미루고, 급하게 또 일손을 뽑는다. 직원이 일곱인데 계산이 맞지 않는 병원은 사실 자리가 영 개인 병원이다.

페이 원장도 같다. 진료 손은 늘었는데 케이스 배분과 진료 재확인과 컴플레인과 어려운 케이스가 여전히 원장에게 오면 더 바빠진다. 어떤 케이스까지 맡는지, 어떤 원칙으로 진료하는지, 어떻게 리뷰하는지를 정하고, 새 환자를 병원 차원에서 어떻게 나누고 소개하는지 설계해야 한다. 3장에서 본, 환자가 원장만 찾는 문제도 그래야 풀린다.

당신의 일은 무엇인가

사춘기를 제대로 통과한 병원에서는 리콜은 누구 것, 재고는 누구 것 하는 식으로 직원마다 자기 영역이 있다. 호출은 하루 몇 번으로 줄고, 이거 어떻게 할까요 대신 이렇게 처리했는데 확인 부탁드려요가 온다. 원장의 감정도 다르다. 직원을 보며 뭘 놓칠까 불안하던 마음이, 이 사람이 다음엔 뭘 해낼까 하는 궁금함으로 바뀐다. 같은 사람들이다. 구조가 관계의 감정까지 바꾼다.

저자는 사춘기의 오너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사업에서 당신의 일은 무엇인가. 나는 한동안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사춘기의 오너는 진료하고 상담하고 관리하고 교육하고 마케팅한다고 목록으로 답한다. 저자는 그 답이 곧 문제라고 말한다. 전부가 내 일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내 일로 정의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오너의 일이 정의되지 않으면 직원의 일도 정의될 수 없다. 위임의 첫 단추는 원장의 일을 정하는 것이다. 진료와 큰 판단과 방향까지가 내 일이라고 선을 그어야 나머지가 넘길 목록이 된다.

사춘기까지의 원장은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쓸 만한가, 믿을 만한가. 그 평가는 대부분 실망으로 끝났다. 이제는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구조를 점검하는 사람이 되자. 이 직원이 못하는 것인가, 기준과 권한과 확인이 없었던 것인가. 답은 십중팔구 구조이고, 그것이 좋은 소식이다. 남을 바꾸는 게임은 이길 수 없지만 구조를 바꾸는 게임은 이길 수 있다.

저자는 사춘기를 사업이 가장 흔하게 죽는 나이로 꼽는다. 몸집은 커졌는데 구조는 유아기 그대로인 격차가 사업을 찢는다. 병원은 망하는 대신 직원이 우르르 나가거나, 원장이 몸으로 무너지거나, 축소의 길로 간다. 좋은 소식은 구조가 마음만 먹으면 몸집보다 빨리 자란다는 것이다. 세 줄짜리 기준과 자리 정의는 일주일이면 시작된다.

시행착오를 몇 바퀴 돈 원장은 갈림길에 선다. 구조를 만들어 크는 길과, 사람과 병원을 줄여 내 손이 닿는 크기로 돌아가는 길. 솔직히 다시 줄이고 싶다는 그 마음을 다음 장에서 정면으로 다룬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사람을 뽑으면 편해진다.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
↓
가질 생각위임은 믿음이 아니라 구조다. 구조 안에서 결과가 쌓이면 믿음이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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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QUESTION 05 / 16

솔직히 다시 줄이고 싶습니다. 저 혼자 할 때가 나았습니다

내가 받은 사연 가운데 가장 솔직한 사연이었고, 그 책에서 내가 가장 아프게 읽은 대목과 정확히 겹치는 사연이다. 직원이 아홉 명까지 갔다가 지금은 여섯이다. 요즘 진지하게 생각한다. 페이 원장을 내보내고 직원 서넛에 진료는 내가 다 하는 작은 병원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그때가 돈은 덜 벌어도 사람은 살 것 같았다.

이 마음부터 인정하고 시작하자. 이것은 게으른 마음이 아니다. 몇 년을 사춘기의 혼란 속에서 버틴 사람만 도달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 마음이 드는 시점이 병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갈림길이다.

사춘기의 벽 앞에서 갈라지는 세 갈래

저자는 사춘기의 혼란 끝에 오너들이 가는 길을 세 갈래로 정리한다. 다시 작아지기, 무리한 질주, 버티기다. 이 세 길이 우리 개원가에서는 이런 문장으로 들린다.

길 개원가에서 들리는 문장 끝
다시 작아지기 직원 스트레스 받느니 소소하게 하려고. 어차피 벌어봤자 세금이야. 조용한 죽음
무리한 질주 확장 이전하려고. 지금 답답한 건 규모가 안 나와서야. 사고
버티기 (문장이 없다. 몇 년째 같은 고민, 결정은 없다) 소진

세 문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구조라는 단어가 없고 크기 이야기만 있다. 줄이거나 키우거나 그대로 두거나. 사춘기의 혼란을 크기의 문제로 읽는 한 선택지는 이 셋뿐이다. 구조의 문제로 읽는 순간 네 번째 길이 열린다. 크기는 그대로 두고 구조를 키우는 길이다.

안전지대라는 단어의 무게

저자가 이 장에 붙인 이름이 '안전지대 너머'다. 안전지대는 나쁜 곳이 아니다. 기술자의 안전지대는 자기 손이 닿는 범위다. 그 안에서는 유능하고, 예측이 되고, 실패해도 자기 실패라 납득이 된다.

문제는 사업이 크는 방향이 정확히 그 바깥이라는 데 있다. 위임도, 기준 만들기도, 숫자 보기도, 사람 세우기도 전부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벌어진다. 병원을 키운다는 것은 정의상 원장이 불편해지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의 불편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경계를 넘는 중이라는 신호일 수 있다. 구분법은 하나다. 구조를 만들면서 겪는 불편은 성장통이고, 구조 없이 반복되는 불편은 사고다.

무리한 질주도 같은 눈으로 봐야 공평하다. 확장 자체는 좋은 일이다. 문제는 혼란을 정리하는 대신 더 크게 벌여서 덮으려는 확장이다. 삐걱거리는 병원을 두 배로 키우면 삐걱거림도 두 배가 되고, 고정비까지 두 배라 이제는 버틸 여유도 없다. 확장 전에 물을 것은 하나다. 지금 병원이 지금 크기에서 구조로 돌아가고 있는가. 원장의 몸으로 때워서 돌아가는 병원이라면 확장은 때울 몸이 두 배 필요하다는 뜻이고, 원장님의 몸은 하나다. 구조가 먼저고 크기가 나중이다.

작아지기의 달콤함, 그리고 그 정체

작아지기를 택한 오너의 첫 몇 달은 정말로 편하다. 직원 문제가 사라지고, 관리할 것이 줄고, 모든 게 다시 눈 안에 들어온다. 거봐, 이게 맞았어. 저자는 이 편안함에 이름을 붙인다. 안전지대로의 후퇴. 작아진 오너가 돌아간 곳은 기술자의 자리다. 문제를 푼 편안함이 아니라 문제가 안 보이는 방으로 이사한 편안함이다.

그 방의 시간이 문제다. 오너는 다시 모든 산출이 자기 몸에서 나오는 유아기의 수학 속에 산다. 이번에는 출구에 대한 희망도 없다. 커지는 길은 한 번 가봤고 데였으니까. 그리고 그 수학은 나이가 들수록 불리해진다. 저자는 이 길의 끝을 사업의 조용한 죽음이라 부른다. 어느 날 문을 닫는데 아무도 놀라지 않는 죽음이다.

아홉 명일 때 힘들었던 목록을 다시 보자. 기준이 없어 모든 질문이 원장에게 왔고, 자리가 없어 일이 사람에게 뭉쳤고, 위임이 방임이어서 사고가 났고, 숫자를 안 봐서 어디가 새는지 몰랐다. 이 가운데 크기의 문제는 하나도 없다. 전부 구조의 문제다. 크기는 그 부재를 더 크게 보여줬을 뿐이다. 작아지면 문제가 풀리는 게 아니라 원장의 몸으로 덮을 수 있을 만큼 작아질 뿐이다. 혼자 할 때가 나았다는 기억도 그렇다. 그때도 저녁은 없었다. 그때가 나아 보이는 건 지금의 혼란과 비교해서지, 그때가 꿈꾸던 병원이어서가 아니다.

이 마음은 왜 하필 지금 오는가

줄이고 싶은 마음은 대체로 사고 직후에 온다. 믿었던 직원이 나간 다음, 몇 달 잘 돌다가 와르르 무너진 다음. 그래서 이 마음은 차분한 판단이 아니라 상처의 반응인 경우가 많다. 상처의 반응에는 '다시는'이 들어간다. 다시는 사람 안 뽑는다, 다시는 안 맡긴다. 한 번의 사고에서 전체의 법칙을 만드는 과잉 결정이다.

그래서 원칙을 하나 권한다. 사고 직후 석 달 안에는 병원의 크기에 관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석 달 뒤에도 같은 마음이면 그때는 진짜 신호일 수 있다. 대부분은 석 달 뒤에 마음이 달라져 있다.

설계된 작음과 도피의 작음

오해는 정확히 끊어두자. 모든 병원이 커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병원의 크기는 원장님 인생의 목적에서 역산되어야 하고, 그 답이 작은 병원일 수도 있다. 다만 두 가지 작음이 있다. 인생의 그림에 맞춰 고른 설계된 작음은 작아도 기준과 기록과 각자의 자리가 있는 어른 병원이다. 구조 만들기가 힘들어 도망친 도피의 작음은 작아진 뒤에도 유아기다. 구분법은 이렇다. 줄인 뒤에 무엇이 좋은지가 아니라 줄인 병원을 어떻게 운영할지가 그려져 있으면 설계에 가깝다.

숫자도 정직하게 보자. 페이 원장이 나가면 그 진료량이 통째로 빠져 매출은 확실히 준다. 그런데 임대료, 장비 리스, 인테리어 감가는 그대로다. 고정비는 규모에 맞춰 지어져 있는데 매출만 원장 몸 크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몇 달 지나면 남는 것을 지키려고 진료를 늘리게 된다. 사람만 줄이는 축소는 재무로도 어정쩡하다. 진지하다면 이 계산부터 실제 숫자로 해봐야 한다.

직원들도 신호를 읽는다. 충원을 멈추고 투자를 멈추고 원장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늘면, 가장 좋은 직원부터 움직인다. 남은 사람으로 병원은 더 힘들어지고, 그 힘듦이 결심을 굳힌다. 축소는 이렇게 자기실현이 된다. 그러니 몇 년씩 줄일까 말까를 입에 올리며 버티는 것이 최악이다.

꿈의 문을 닫는다는 것

이 장에서 내가 밑줄을 두 번 그은 대목이 있다. 작아지는 오너는 사업의 문이 아니라 꿈의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병원은 계속 돌아간다. 닫히는 건 개원하던 날 그렸던 그림이다. 그날부터 병원은 버는 곳, 견디는 곳이 된다. 그 책의 사라가 결국 파이를 미워하게 됐던 것처럼, 꿈이라는 지붕이 없어진 노동은 비를 그대로 맞는다.

이 길을 가본 한 원장님의 회고를 각색해 옮긴다. 줄이고 첫 몇 달은 조용하고 단순해서 좋았다. 그런데 일 년쯤 지나니 그 싫던 문제들이 작은 병원에도 그대로 있었다. 직원 두 명 사이에도 갈등은 있었고, 기준이 없으니 두 명도 전부 자기에게 물었다. 규모의 소음이 사라지니 구조의 문제가 맨살로 드러났다. 가장 힘들었던 건 '언젠가 제대로 키워봐야지'라는 문장을 더는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분은 이렇게 남겼다. 줄여서 얻은 건 단순함이었고 잃은 건 다음이었다.

그래서 이 갈림길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병원을 줄이고 싶은 건가, 꿈을 반납하고 싶은 건가. 후자라면 그것은 인생의 결정이고, 지친 밤에 내리면 안 된다.

줄이기 전에 반년만

그래서 제안한다. 줄이는 결정을 반년만 미루고, 지금 크기에서 구조를 넣는 실험을 해보자.

시기 할 일
첫 달 · 기준 반복 질문 다섯 개의 답을 정해 공유하고, 하루 호출 횟수를 잰다
둘째 달 · 자리 뭉친 일을 종이에 펼치고 하나를 골라 세 줄과 함께 넘긴다
셋째 달 · 숫자 매달 볼 숫자 세 개를 정하고 첫 기록을 남긴다
넷째~여섯째 달 셋을 유지하며 하나씩 더하고, 여섯째 달에 채점한다

이 실험의 결말은 둘이고, 둘 다 남는 장사다. 채점 기준도 둘이다. 하루 호출 횟수가 줄었는가, 줄이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인가. 호출이 줄고 마음이 옅어졌다면 문제는 크기가 아니었다. 호출이 줄었는데도 마음이 그대로라면 존중해야 할 신호다. 그때 인생의 그림과 함께 설계된 축소를 하면 된다. 구조를 아는 상태로 줄인 작은 병원은 도피로 줄인 병원과 완전히 다른 작은 병원이다. 어느 쪽이든 반년 뒤의 원장님은 도피가 아니라 데이터로 결정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도피로 줄인 병원은 몇 년 뒤 후회와 함께 이 갈림길로 돌아오고, 그때는 나이가 더 들고 선택지는 더 좁다.

버티기에 서 계신 원장님께는 따로 말해두고 싶다. 버티기는 무난해 보이지만 결정 회피의 다른 이름이다. 버티는 동안 체력은 줄고 직원은 순환하고 시장은 변한다. 오 년을 버틴 병원은 오 년 치 소모가 쌓인 병원이다. 그러니 큰 결심을 하실 필요는 없다. 결심이 필요 없을 만큼 작은 실행 하나, 기준 다섯 개 정하기를 오늘 밤 예약하는 것이 그 관성에 내는 첫 균열이다.

아홉에서 여섯이 된 그 몇 년도 다시 읽어보자. 사람의 문제로 기억하면 남는 건 불신뿐이다. 구조의 눈으로 복기하면 데이터가 된다. 그 실장은 왜 겉돌았나, 기준을 준 적이 없었다. 그 퇴사는 왜 갑작스러웠나, 면담이 없었다. 한쪽 독법은 '다시는 안 해'를 낳고 다른 독법은 '다음엔 이렇게'를 낳는다. 그 몇 년은 낭비가 아니라 등록금이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다. 이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자격이다. 유아기 한가운데의 원장은 이 고민을 할 수조차 없다. 줄일까를 고민한다는 것은 사춘기를 몸으로 다 통과했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크기 대신 구조라는 단어를 만나 방향을 트는 원장들이 실제로 있다. 바닥이라고 느끼는 지점이 대체로 방향을 바꾸는 지점이다. 도망칠 곳을 찾는 사람에서 지을 것을 찾는 사람으로. 내가 원한 건 작은 병원이 아니라 감당되는 병원이었고, 감당은 크기가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준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줄이면 편해진다. 혼자 할 때가 나았다.
↓
가질 생각도망치고 싶은 건 크기가 아니라 구조 없는 혼란이다. 축소는 해방이 아니라 천장의 확정이다.

무리한 질주 쪽에 계신 원장님께는 대칭 문장을 드린다. 확장도 도피일 수 있다. 작아지기와 무리한 질주는 반대 방향 같지만 같은 것에서 도망치는 중이다. 구조를 만드는 일에서.

이번 주에 할 것 · 해낸 것은 눌러 표시하세요
06
QUESTION 06 / 16

잘되는 병원들은 도대체 뭐가 다릅니까

이 질문에는 비슷한 사연이 여럿 붙어 있었다. 학회에서 만나는 잘되는 원장들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나보다 실력이 좋은 것 같지도 않은데 병원은 훨씬 크다. 도대체 뭘 아는 걸까.

1부에서 우리는 사업의 나이를 따라왔다. 유아기, 사춘기, 그리고 그 사이의 갈림길들. 이제 마지막 나이, 어른이 된 병원인 성숙기다. 그런데 이 장을 읽을 때 나는 정말로 뒤통수를 맞았다. 답이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어른 병원은 유아기를 졸업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여기까지 읽은 원장님은 계단 같은 그림을 떠올리실 것이다. 유아기를 지나 사춘기를 통과하면 성숙기가 온다. 그런데 저자가 위대한 사업들을 추적해보니, 상당수는 그 단계를 통과해서 어른이 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어른의 관점으로 시작했다. 성숙기는 도착하는 곳이 아니라 출발하는 방식이었다.

저자는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를 일군 창업자의 회고를 근거로 든다. 그는 회사가 완성됐을 때의 모습을 처음부터 그려놓았고, 매일 그 그림에 맞춰 오늘의 회사를 만들었다. 하루의 끝마다 오늘의 회사를 그림과 비교했고, 차이가 있으면 다음 날 아침 그 차이부터 메꿨다. 그림이 먼저 있었고 사업이 그 그림을 향해 자란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기업가의 관점이라 부른다.

기술자의 시간과 기업가의 시간

이 차이를 시간의 방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기술자의 시간 기업가의 시간
흐르는 방향 과거에서 미래로 미래에서 현재로
오늘이란 어제의 연장 완성된 그림에 가까워지기 위한 하루
병원의 모양 결과 — 어쩌다 이렇게 됐다 목표 — 이렇게 되기로 했다

지금 병원의 진료 과목 구성, 직원 수, 인테리어, 운영 방식 가운데 계획해서 그렇게 된 것이 몇 개인가. 대부분 어쩌다일 것이다. 환자가 늘어서 어쩌다 사람을 뽑았고, 그 사람이 잘해서 어쩌다 그 일을 맡았고, 옆 병원이 해서 어쩌다 그 장비를 들였다. 어쩌다의 축적으로 지어진 병원. 잘되는 병원과의 차이는 여기서 시작된다.

잘되는 병원의 진짜 차이

더 노력해서가 아니다. 원장님보다 노력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실력도 아니고, 몇 년을 못 가는 운도 아니다. 다른 것은 방향이다. 그들에게는 완성의 그림이 있고, 매일의 결정이 그 그림 쪽을 향한다.

같은 결정 그림 없는 병원 그림 있는 병원
직원을 뽑을 때 지금 바빠서 → 일손이 는다 완성된 병원의 그 자리를 채우려고 → 조직이 자란다
장비를 들일 때 옆 병원이 들여서 → 지출 가려는 방향에 필요해서 → 전진
힘든 시기에 견딘다 → 소모 격차를 재고 메꿀 것을 정한다 → 단련

하루만 보면 차이는 미미하다. 그런데 매일의 결정이 조금씩 다른 방향을 향한 채 삼 년이 쌓이면, 한쪽은 어쩌다의 병원이고 한쪽은 설계된 병원이 된다. 학회에서 느낀 격차의 정체가 이것이다.

그래서 잘되는 병원에서 엉뚱한 것을 배우기 쉽다. 견학을 가면 결과물이 보인다. 저 장비, 저 상담실, 저 응대. 그래서 같은 장비를 들이고 상담실을 비슷하게 꾸미는데 효과가 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 병원의 그림에서 자라 나온 가지라서, 뿌리 없이 꺾어 오면 시든다. 다음에 잘되는 병원을 만나면 질문을 바꿔보자. 뭘 쓰세요가 아니라, 이 병원을 어떤 병원으로 만들고 계신 거예요. 그 답에서 배울 것이 진짜다.

여유의 정체, 그리고 실력의 역설

잘되는 원장들의 그 이상한 여유도 풀어보자. 바쁨과 쫓김은 다르다. 바쁨은 일이 많은 상태고, 쫓김은 방향 없이 일이 많은 상태다. 그림이 없는 원장의 하루는 전부 대응이라 일이 적은 날에도 쫓긴다. 그림이 있는 원장은 오늘의 소란이 그림 안에서 어디쯤인지 알고, 어떤 소란은 무시해도 된다는 것을 안다. 그 선별이 여유의 정체다. 여유는 성격도 형편도 아닌, 그림의 부산물이다.

'나보다 실력이 좋은 것 같지도 않은데'라는 대목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실력이 애매한 원장은 진료만으로는 안 된다는 벽을 일찍 만나, 살기 위해 구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실력이 좋은 원장은 그 벽을 만나지 않는다. 환자가 오니 지금 방식이 맞다는 확인이 계속되고, 그 확인이 관점 전환을 십 년씩 미룬다. 잘하는 것이 배움을 막는 셈이다. 이것을 뒤집으면 희망이 된다. 구조를 아는 실력자를 시장은 이기지 못한다. 원장님은 실력이라는 어려운 절반을 이미 가지고 있다. 부족한 것은 관점 하나다.

미래에서 역산하는 한 주

기업가의 시간이 관념이 아님을 보여주는 원장의 한 주를 그려보자. 이 원장에게는 삼 년 뒤 병원의 그림이 있고, 거기서 올해 과제 세 개가 나와 있다. 예컨대 상담 시스템 완성, 둘째 진료 축 세우기, 소개 환자 비중 올리기.

월요일, 직원을 뽑아야 한다. 급한 자리보다 올해 과제를 먼저 본다. 상담 시스템을 만드는 해라면 상담 보조가 가능한 사람을 뽑는다. 수요일, 업체가 좋아 보이는 새 장비를 들고 왔다. 세 과제 어디에도 붙지 않으니 내년에 다시 보자로 끝낸다. 오 분 만에. 금요일에는 이번 주가 그림에 가까워졌는지 십 분 본다. 그림은 액자가 아니라 필터다. 결정이 빨라지니 시간이 남고, 일관되니 쌓인다.

왜 삼 년인가. 일 년은 지금의 관성으로 닿는 미래라 그림이 아니라 예측이 된다. 십 년은 너무 멀어 공상이 된다. 삼 년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 가능하면서도 손에 잡히는 거리다. 그리고 삼 년 그림은 올해의 과제 셋을 낳고, 올해는 이번 분기를, 이번 분기는 이번 주를 낳는다. 미래에서 현재로 흐르는 시간이란 이 역산의 사슬이다.

그림에 대한 세 가지 반론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사업 아닌가. 맞다. 그런데 그림의 용도는 예언이 아니라 필터다. 목적지가 있는 배와 없는 배는 같은 폭풍에서 다르게 움직인다. 그림은 고쳐 그리면 된다.

하루 버티기도 벅찬데 삼 년 뒤를 어떻게 생각하나. 순서가 반대다. 삼 년 뒤가 없어서 하루가 버티기가 된 것이다. 그림이 생기면 오늘 일의 절반은 흘려보내도 된다는 게 보인다. 여유가 생겨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이 여유를 만든다.

그렸다가 못 이루면 더 괴롭지 않나. 가장 솔직한 반론이다. 적지 않은 꿈은 지켜지지도 않는다. 적히지 않은 꿈은 감옥의 벽 속으로 사라지고, 적힌 꿈만 문이 된다.

어른으로 태어나는 병원

처음부터 어른의 관점이라는 말이 처음부터 크게 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 컴퓨터 회사도 시작은 작았다. 다른 것은 오늘을 대하는 태도다. 데스크가 한 명이어도 전화 응대의 기준이 있고, 직원이 셋이어도 각자의 자리가 정의되어 있고, 숫자가 작아도 매달 본다. 크기는 유아기인데 태도는 성숙기인 병원. 이 병원은 클 때마다 필요한 구조가 씨앗으로 심어져 있어 사춘기의 혼란을 거의 겪지 않는다. 병원의 나이는 달력이 아니라 관점이 정한다.

그러면 그림 없이 보낸 몇 년은 후회해야 할까. 아니다. 이것은 위로가 아니라 계산이다. 그림의 재료는 우리 병원에 대한 지식이고, 그 재료는 지나온 세월에서 온다. 개원 첫날의 그림이 상상이라면 오 년 차의 그림은 경험 위에 선 설계다. 재료는 다 모였고 조립만 남았다.

얼마나 어쩌다로 지어졌는지 재보는 법도 있다. 진료 과목 구성, 직원 수와 구성, 위치, 평수, 인테리어 톤, 진료 시간, 가격대, 마케팅 채널, 장비 구성, 원장님의 주당 진료 시간. 이 열 개에 각각 묻는다. 결정인가, 누적인가. 결정이 두세 개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목적은 자책이 아니라, 이 열 개가 전부 앞으로 결정으로 바꿀 수 있는 항목임을 보는 것이다. 어쩌다 정해진 것에는 관성만 있지 정당성은 없다.

그림은 어디서 나오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슨 그림을 그려야 할까. 큰 병원, 유명한 병원, 매출 얼마짜리 병원? 저자는 그 전에 그릴 그림이 있다고 말한다. 오너의 인생 그림이다. 병원은 목적이 아니라 원장님 인생의 도구이므로, 완성된 병원의 모습은 원장님 인생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서 역산되어야 한다. 인생 그림 없이 그린 병원 그림은 더 크게, 더 많이 같은 방향 없는 최상급으로 흐른다. 이 이야기는 3부에서 정면으로 다룬다.

그림은 원장님만의 것도 아니다. 병원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직원도 자기가 삼 년 뒤 무엇이 될지 모른다. 좋은 직원이 몇 년 다니다 나가는 이유 중 월급만큼 큰 것이 이 불투명이다. 그림을 그리면 직원들에게 이야기하자. 그림은 경영 도구이기 전에 사람을 모으는 깃발이다.

그림이 서랍에서 죽지 않게 하는 장치는 두 개면 된다. 하나, 원장실 벽이나 다이어리 첫 장처럼 자주 마주치는 곳에 둔다. 둘, 분기에 한 번 반나절, 병원 밖에서 그림을 꺼내 세 가지를 본다. 그림에 가까워졌는가, 고칠 부분이 생겼는가, 다음 분기에 메꿀 격차 하나는 무엇인가. 일 년에 이틀이 안 되는 이 시간이 원장님 안의 기업가가 일하는 시간이다.

1부를 닫으며

지금까지 원장님의 기준점은 과거에 있었다. 어제까지 하던 대로, 작년보다는. 과거를 기준으로 사는 원장은 작년보다 나으면 만족하고, 미래를 기준으로 사는 원장은 그림에 가까워졌으면 만족한다. 앞의 만족은 관성을, 뒤의 만족은 방향을 만든다. 잘되는 병원이 달랐던 것은 결국 이 만족의 기준점이었다.

이제 지도에 좌표를 찍어보자. 모든 게 나를 통과하는 유아기인가, 사람은 뽑았는데 일이 줄지 않은 사춘기인가, 줄일까 키울까의 갈림길인가. 유아기면 기록부터, 사춘기면 위임의 구조부터, 갈림길이면 반년의 실험부터. 그리고 어디에 있든 공통 처방은 그림이다.

혹시 마음이 무겁다면, 그것은 새로 얹힌 무게가 아니라 원래 지고 있던 무게에 처음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름 붙은 짐은 선명하지만 내려놓을 수 있다. 이 지도의 어느 좌표도 종착지가 아니다. 2부는 그 문을 여는 관점 전환이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크고 나면 정리하겠다. 자리 잡으면 체계를 갖추겠다.
↓
가질 생각정리해야 큰다. 어른 병원은 크기가 아니라 태도에서 태어난다.

1부 전체를 한 문장으로 접는다. 병원의 나이는 저절로 들지 않는다. 관점이 바뀌는 날, 병원은 하루 만에 어른이 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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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2

감옥의 문을 여는 열쇠

Q07 — Q08
07
QUESTION 07 / 16

좋은 진료만 하면 환자는 오는 것 아닙니까

2부는 감옥의 문을 여는 열쇠, 관점 전환의 이야기다. 그 문을 이 사연으로 연다. 마케팅이니 뭐니 하는 게 좀 불편하다. 의사는 진료로 말하는 것 아닌가. 좋은 진료를 하면 환자는 알아서 오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아름답다. 나는 이 믿음의 절반을 지켜드리고 절반을 부수려 한다. 부수는 도구는 그 책의 2부에 나오는, 세상의 사업 문법을 통째로 바꾼 한 사람의 이야기다.

쉰두 살의 믹서기 판매원

1950년대 미국,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산 쉰두 살의 믹서기 판매원이 있었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의 작은 햄버거 가게 하나가 믹서기를 한꺼번에 여덟 대나 주문한다. 궁금해서 찾아간 그는 인생을 바꾸는 광경을 본다. 가게 앞에 줄이 늘어서 있는데 주문한 햄버거가 삼십 초 만에 나온다. 주방의 모든 동작이 설계되어 있었다. 누가 패티를 굽고 누가 포장하고 몇 초에 무엇이 움직이는지. 그 가게가 맥도날드 형제의 가게였고, 판매원의 이름이 레이 크록이다.

크록이 그날 본 것은 맛있는 햄버거가 아니라 기계였다. 누가 돌려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완벽하게 설계된 사업이라는 기계. 그는 형제를 설득해 그 방식에 대한 권리를 사고, 몇 년 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외식 기업을 만든다. 크록보다 맛있는 햄버거를 만드는 가게는 수천 개 있었다. 그가 판 것은 햄버거가 아니라 사업 그 자체였다. 저자는 이 발상의 전환을 턴키 혁명이라 부른다. 열쇠만 돌리면 돌아가는 사업.

이 이야기가 병원과 무슨 상관인가

병원이 햄버거 가게인가, 진료가 패티인가 하는 방어막이 올라올 것이다. 분명히 해둔다. 병원을 늘리거나 어디에 더 내라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병원을 하나만 열 수 있고, 나는 그 법이 지키려는 가치에 동의한다.

크록에게서 가져올 것은 확장이 아니라 질문이다. 당신이 파는 것은 무엇인가. 형제는 햄버거를 판다고 생각했다. 크록은 그 가게가 실제로 파는 것이 빠르고, 균일하고, 언제나 같은 경험이라는 것을 봤다. 햄버거는 그 경험의 한 부품이었다. 원장님은 무엇을 파는가. 진료라고 답하고 싶을 것이다. 그 답이 바로 '좋은 진료만 하면 환자는 온다'는 믿음의 뿌리다.

환자가 사는 것의 목록

환자 쪽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가 아픈 환자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

순간 환자가 사는 것
폰으로 검색할 때 병원의 이름과 후기
전화를 걸 때 전화 너머의 목소리와 응대
병원 문을 열 때 첫인상, 안내, 대기의 경험
진료 의자에서 아팠는지, 설명이 이해됐는지, 존중받았는지
수납할 때 비용에 대한 납득
다음 날 아플 때 전화했을 때의 반응

이 여정에서 원장님의 기술 그 자체가 차지하는 시간은 십오 분에서 삼십 분이다. 나머지는 전부 진료가 아닌 경험이다. 원장님은 진료를 판다고 생각하지만, 환자는 병원이라는 경험 전체를 산다. 그리고 다시 올지, 남에게 이야기할지는 그 전체가 정한다.

환자는 비교할 수 있는 것만 비교한다

실력도 없는 저 병원이 왜 잘되나, 환자는 왜 좋은 진료를 몰라주나. 개원가의 오래된 억울함이다. 그러나 환자를 탓할 일이 아니다. 환자에게는 도구가 없다. 원장님은 다른 의사의 술식을 보면 수준이 보인다. 십 년을 훈련했으니까. 환자에게는 그 십 년이 없다. 그래서 환자는 평가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전화 태도, 기다린 시간, 설명, 통증, 직원의 표정, 후기. 전부 진료의 주변부지만 환자에게는 유일한 창이다.

이 구조를 원망하면 억울함만 남고, 인정하면 전략이 나온다. 실력 없는 병원이 창만 닦아서 잘되는 게 화가 난다면, 답은 창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실력 있는 우리가 창까지 닦는 것이다. 내용물도 좋고 전달도 좋은 병원을 무엇으로 이기겠는가.

삼십 초 햄버거의 진짜 교훈

삼십 초가 위대한 게 아니다. 매번 삼십 초라는 게 위대하다. 손님은 기다림이 얼마일지 알고 줄을 선다. 병원으로 옮기면 교훈은 속도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다. 환자가 가장 불안한 것은 오래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얼마나 기다릴지 모르는 것이다. 치료비가 큰 것보다 얼마가 나올지 가늠이 안 되는 게 더 무섭다.

그래서 경험 설계의 첫 원칙은 화려함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다. 대기가 길어지면 미리 알려주고, 비용의 범위를 먼저 말해주고, 시술 중에 지금 무엇을 하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말해준다. 돈 드는 일이 하나도 없다. '여기는 언제 가도 똑같아요'라는 후기는 밋밋해 보이지만 최고의 칭찬이다. 예측이 된다는 건 믿는다는 뜻이다.

믿음의 절반, 그리고 '진료로 말한다'의 완성

이제 그 믿음을 정산하자. 지켜드릴 절반. 좋은 진료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 진료는 모든 것의 기초 공사고, 원장님이 진료에 쏟은 십 년은 단 일 초도 낭비가 아니었다. 부술 절반. 좋은 진료가 알아서 알려지지는 않는다. 전화 응대가 엉성한 병원의 진료를 환자는 신뢰하지 않고, 설명이 급한 병원의 술식을 정교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 좋은 진료는 좋은 경험에 실려야 전달된다. 경험은 진료의 포장이 아니라 전달 수단이다.

마케팅이라는 단어가 불편한 원장님께 드리는 재정의도 여기서 나온다. 마케팅은 없는 것을 부풀리는 일이 아니라 있는 것을 전달되게 만드는 일이다. '의사는 진료로 말한다'는 문장도 버리지 마시라. 다만 말은 듣는 사람이 있어야 성립하고, 환자에게는 진료를 직접 들을 귀가 없다. 경험이라는 통역을 거쳐야 들린다. 설명의 방식, 치료 전후의 안내, 사후의 확인이 전부 통역이다. 문장을 이렇게 완성하자. 나는 진료로 말한다. 그래서 내 진료가 들리게 만드는 일까지가 내 일이다.

경험은 설계할 수 있다

파는 것이 경험이라면 경험은 설계할 수 있다. 지금 우리 병원의 환자 경험은 누가 설계했는가. 아무도 안 했다. 전화 응대는 그날 받는 사람이, 대기실은 그날 바쁜 정도가, 설명의 깊이는 그날 밀린 예약이 정한다. 상품의 품질이 매일 복불복이다. 크록의 가게가 위대했던 것은 그 복불복을 없앤 데 있다. 병원으로 번역하면, 어느 요일에 와도, 어느 직원을 만나도, 원장님 컨디션이 어떻든 같은 수준의 경험을 받는 병원이다. 환자 경험은 날씨가 아니라 건축이다.

경험을 판다는 말을 굽신거리라는 말로 들으면 안 된다. 의료에서 환자가 원하는 것은 대접이 아니라 안심이다. 환자는 손님이기 이전에 불안한 사람이다. 그래서 병원의 경험 설계는 접객 훈련이 아니라 불안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

  1. 첫 통화의 불안에는 친절한 안내 순서를
  2. 대기의 불안에는 예상 시간 안내를
  3. 비용의 불안에는 투명한 설명 순서를
  4. 치료 후의 불안에는 다음 날의 확인 연락을

환자의 불안을 진지하게 다루는 병원보다 품위 있는 병원은 없다.

돈의 관점에서도 순서가 있다. 광고는 임대라서 돈을 내는 동안만 환자가 온다. 설계된 경험은 자산이라서 한 번 지어두면 환자가 올 때마다 일하고, 만족은 후기와 소개가 되어 다음 환자를 데려온다. 경험이 엉성한 상태의 광고는 금 간 독을 동네방네 보여주는 일이다. 경험 먼저, 확성기는 나중이다. 지금은 그 순서가 더 급하다. 예전 환자는 가까운 곳, 아는 사람이 말해준 곳에 갔다. 지금 환자는 문을 열기 전에 검색과 후기로 여러 병원을 만나고, 다녀간 뒤에는 자기 경험을 별점과 한 줄로 무대에 올린다. 경험이 곧 유통이다. 실력으로 두 배 차이를 내기는 불가능하지만 경험으로 두 배 차이를 내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다.

크록의 눈, 그리고 크록에게 배우면 안 되는 것

그 가게 앞의 줄은 손님도, 납품업자도, 형제 자신도 매일 봤다. 그런데 그 줄에서 세기의 사업을 본 사람은 크록뿐이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읽는 힘, 그것이 관점이다. 원장님 병원에도 매일 무언가가 일어난다. 잘 돌아가는 어떤 절차, 환자들이 유독 고마워하는 어떤 순간, 직원 한 명의 탁월한 방식. 기술자의 눈에는 일상이지만 사업가의 눈에는 병원의 방식으로 굳혀야 할 원형이다.

환자가 우리 병원을 남에게 이야기할 때 꺼낼 한 장면이 있는가. 그 병원은 치료 다음 날 꼭 전화가 와. 그 병원은 설명을 그림으로 그려줘. 없다면 경험에 설계된 봉우리가 없다는 뜻이다. 소개가 돌지 않는 병원의 공통점은 나쁜 게 아니라 이야깃거리가 없는 것이다.

균형을 위해 반대면도 말해둔다. 크록의 후반 인생은 논쟁적이고, 형제와의 결별도 아름답지 않았다. 우리가 배울 것은 사업 전체가 상품이라는 눈 하나다. 배우면 안 되는 것은 사람을 부품으로 보는 눈이다. 반복되는 것을 설계하는 이유는 사람이 사람에게 집중할 여유를 만들기 위해서다. 효율은 목적이 아니라 온기의 재원이다.

원장님이 보지 못하는 병원

원장님이 아는 우리 병원은 원장님이 있는 병원이다. 원장님이 지나가면 직원의 자세와 응대가 달라진다. 원장님은 대기실에서 기다려본 적도, 우리 병원에 전화를 걸어본 적도 없다. 환자가 만나는 병원은 원장님이 진료실에 있을 때의 병원, 원장님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병원이다. 원장님은 친절하다고 믿는데 후기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는 이유다. 둘 다 진실이고, 서로 다른 병원을 본 것이다.

이 관점은 직원에게도 옮겨가야 한다. 데스크 직원은 자기가 전화를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상품의 첫 페이지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렇게 말해준 적이 없으니까. 관점이 생긴 직원에게는 같은 전화가 첫인상을 만드는 작업이 된다.

지금까지 원장님은 진료실 안에서 상품을 만들었고, 진료실 밖의 일은 잡무였다. 이제 상품의 정의가 바뀐다. 검색하는 순간부터 치료 후 연락까지 전체가 상품이다. 전화 응대는 상품의 첫 페이지고 대기실은 상품의 한 챕터다. 기술자는 진료를 만들고 사업가는 경험을 만든다. 병원이 파는 것이 진료뿐이라면 1부의 고통은 숙명이다. 진료는 원장의 몸에서만 나오니까. 파는 것이 경험이라면 다르다. 경험은 설계할 수 있고, 설계된 것은 원장의 손을 일일이 거치지 않아도 매일 재생되고, 그러면 원장은 원장의 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래도 진료지 하는 목소리가 남아 있다면 건강한 것이다. 이번 주 과제가 결론을 내려줄 것이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나는 진료를 판다. 좋은 진료만 하면 환자는 온다.
↓
가질 생각환자는 병원이라는 경험을 산다. 좋은 진료는 좋은 경험에 실려야 전달된다.
이번 주에 할 것 · 해낸 것은 눌러 표시하세요
08
QUESTION 08 / 16

이렇게 십 년을 벌어도, 뭐가 남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개원 십일 년 차 원장님의 사연이다. 벌 만큼 벌었고 빚도 갚았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허무가 온다. 이 병원은 결국 내가 진료를 멈추는 날 끝나는 것 아닌가. 이십 년을 더 해도 그날 남는 게 뭔가.

이 허무는 정확한 직관이다. 느낌이 아니라 구조를 정확히 본 것이다. 이 장에서는 그 구조를 확인하고, 그 책의 후반부를 지배하는 사고 실험 하나로 구조를 바꾸는 길을 보려 한다.

크록이 판 것의 두 번째 겹

앞 장에서 크록은 햄버거가 아니라 사업을 팔았다고 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다. 그 전까지 세상의 가게들은 주인과 한 몸이라 팔 수가 없었다. 가게를 산다는 것은 주인의 손맛과 단골과 노하우를 사는 일인데, 그것은 주인을 따라 나가버린다. 가게의 가치가 주인 안에 있으면 가게는 상품이 될 수 없다.

크록의 가게는 가치가 주인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 있었다. 절차와 기준과 훈련 방식, 운영의 모든 지식이 사람 밖에, 문서와 구조 안에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사업이 통째로 거래 가능한 물건이 됐다. 저자는 모든 오너에게 묻는다. 당신의 사업은 팔 수 있는 사업인가. 주인이 바뀌어도 가치가 남는가. 그리고 유명한 제안을 한다. 실제로 팔 생각이 없어도, 팔 수 있는 것처럼 지으라. 이 사고 실험 하나가 사업을 보는 눈 전체를 바꾸기 때문이다.

병원 버전의 사고 실험

병원을 파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실험의 용도는 매각이 아니라 엑스레이다. 십 년 뒤, 원장님이 이 병원을 후배 원장에게 넘기는 날을 상상해보자. 병원 양수도는 실제로 있는 합법적인 일이니 상상에 무리가 없다.

후배가 사는 것은 무엇인가. 십 년 쓴 체어와 장비는 값이 얼마 안 된다. 인테리어는 감가상각이 끝났다. 자리는 임차라면 권리금 정도다. 차트의 숫자는 많지만 그 환자들이 새 원장에게도 올지는 모른다. 후배가 정말 사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주인이 바뀐 뒤에도 작동하는 무언가. 환자가 계속 오게 만드는 구조, 직원들이 일하는 방식, 상담이 되는 시스템, 쌓여 있는 운영의 지식. 그게 있으면 후배는 진료만 이어받으면 되니 제값을 낸다. 없으면 그가 사는 것은 중고 장비와 자리뿐이다.

오늘 기준으로 점검해보자.

병원의 가치 지금 있는 곳 넘기는 날 병원에 남는가
전화 응대의 방식 원장이 그때그때 알려주던 것 남지 않는다
상담의 노하우 원장과 실장의 머릿속 남지 않는다
환자와의 신뢰 원장 개인에게 붙은 것 남지 않는다
운영의 지식 기록된 것 없음 남지 않는다

십일 년 차 원장님의 허무는 이 계산이었다. 십 년을 부었는데 병원이라는 그릇에 고인 것이 없고, 전부 원장이라는 사람을 통과해서 흘러가버린 구조. 지금 이대로면 소득 말고는 남지 않는다고 구조가 답하고 있었다.

마지막 날에서 거꾸로

이 실험을 시간 축으로 돌려보자. 예순다섯까지 진료한다면 남은 시간은 이십 년쯤이다. 그 마지막 날, 원장 의존 구조 그대로라면 선택지는 둘이다. 문을 닫거나 시설값에 넘기거나. 이십 년 더 부은 것이 그날 거의 소멸한다. 팔 수 있게 지어진 병원이라면 제값에 승계할 수도 있고, 진료를 줄이면서 천천히 물러날 수도 있다. 병원이 원장의 몸에만 묶여 있지 않으니까.

두 원장의 은퇴 일주일 전을 그려보면 차이가 선명하다. 첫 번째 병원에는 폐업 안내문이 붙었다. 환자들은 차트 사본을 받아 가고, 직원들은 새 일자리를 알아보고, 장비 중고상이 다녀갔다. 삼십 년의 마지막 주가 해체의 주다. 두 번째 병원에서는 새 원장이 두 달째 같이 진료하고 있다. 환자들에게는 몇 달 전부터 안내가 나갔고, 시스템이 같으니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직원들은 그대로 남는다. 물러나는 원장은 새 원장과 십오 년 치 기준과 기록이 담긴 문서를 한 번 더 훑는다. 그리고 마지막 날, 병원은 평소와 똑같이 돌아간다.

같은 직업, 같은 성실함, 다른 설계.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마지막 해의 노력이 아니라 지금부터 매달 쌓는 문서 한 장, 기준 한 줄이다. 남은 이십 년이면 자산 하나를 통째로 지을 시간이다. 십일 년 차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일자리와 자산의 차이

그 책의 핵심 문장을 내 말로 옮기면 이렇다. 사업의 가치가 전부 주인의 몸 안에 있다면, 그는 사업이 아니라 일자리를 가진 것이다. 일자리는 내가 일하는 동안만 돈이 나오고, 멈추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자산은 내 노동과 분리된 가치가 있어서 팔 수도, 물려줄 수도 있고, 내가 쉬어도 가치가 유지된다.

지금 대부분의 병원은 고소득 일자리다. 원장이 매일 출근해서 몸으로 돌리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일자리. 이십 년을 운영해도 결과는 이십 년 치 소득이다. 팔 수 있게 지어진 병원은 매일의 운영이 소득을 만들면서 동시에 자산을 쌓는다. 오늘 만든 기준 하나, 오늘 기록한 절차 하나가 병원이라는 그릇에 고인다.

오해 없도록 말해둔다. 이것은 파는 날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팔 수 있는 상태의 병원은 그 이전의 매일이 다르다. 원장이 덜 갈리고, 직원이 덜 흔들리고, 품질이 덜 출렁인다. 팔 수 있음은 목적이 아니라 잘 지어졌음의 증명서다. 환자에게도 이 병원이 더 좋다. 모든 것이 원장 머릿속에만 있는 병원은 원장이 피곤한 날 무언가가 빠진다. 기록과 절차 위에서 돌아가는 병원은 확인 절차가 빠짐을 잡아주고, 특이사항은 기록이 기억한다. 항공과 수술실이 사람의 기억 대신 절차와 점검표를 쓰는 이유와 같다. 의료답지 않기는커녕 이쪽이 더 의료답다.

원형의 세 가지 규칙

팔 수 있는 것처럼 짓는다는 게 막연하다면, 저자가 '원형'이라 부르는 사업의 설계 규칙을 병원 언어로 옮겨보자. 원형은 언제 누가 돌려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본보기라는 뜻이다.

  1. 평범한 사람이 운영해도 비범한 결과가 나오게 지어라. 가장 불편한 규칙이다. 뛰어난 사람을 뽑아 알아서 하게 하는 것을 저자는 시스템의 부재를 사람으로 때우는 일이라 부른다. 우리 병원이 잘 돌아가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사람 이름이 나오면 위험 신호다. '우리 실장님이 잘해서요'는 실장님이 나가는 날의 예고편이다.
  2. 일하는 방식이 문서로 존재하게 하라. 문서의 목적은 통제가 아니라 보존이다. 구전은 전달될 때마다 변형되고, 문서는 다듬을수록 좋아진다.
  3. 고객이 받는 경험이 예측 가능하게 일관되게 하라. 아주 좋은 날과 나쁜 날이 섞인 병원보다 항상 괜찮은 병원이 신뢰를 얻는다.

세 규칙을 관통하는 정신은 하나다. 가치를 사람 안에서 구조 안으로 옮기는 것. 삼 대째 이어지는 식당들은 맛이 사람이 아니라 방식에 있다. 조리법과 재료 기준과 하루의 절차가 전수 가능한 형태로 존재한다. 병원은 전수할 방식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자녀가 의사가 되어도 물려받을 것이 상호와 자리뿐이다. 승계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전수 가능하게 지어진 병원은 전수하지 않아도 강하다. 새 직원이 올 때마다, 병원이 커질 때마다 방식이 그대로 이어진다. 전수 가능성은 승계의 조건이기 전에 지속의 조건이다.

무엇이 자산으로 고이는가

병원에 돈을 쓸 때 우리는 보이는 것에 쓴다. 장비, 인테리어, 확장. 이런 투자는 사는 날이 가장 비싸고 그날부터 값이 떨어진다. 구조에 하는 투자는 반대로 움직인다.

시설 투자 구조 투자
예 장비, 인테리어, 확장 전화 응대 기준, 숫자 기록, 위임의 구조
오 년 뒤 중고가 된다 더 다듬어지고, 데이터가 되고, 문화가 된다
보이는 시점 사면 바로 만들어도 당장은 안 보인다

개원가의 투자가 거의 전부 감가상각 쪽으로 가는 이유는, 그쪽은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십 년 뒤 무엇이 남느냐의 답이 이 습관 안에 있었다. 병원에서 자산으로 고이는 것은 다섯 가지다. 절차와 기준과 스크립트 같은 문서, 월별 지표의 숫자 기록, 리콜과 소개가 도는 시스템에 실린 환자 관계, 자리가 정의되고 결정이 위임된 훈련된 조직, 그리고 병원의 일관된 경험이 만든 평판.

병원 넘겨봐야 얼마 못 받는다는 소문은 대체로 사실이다. 거래되는 병원 대부분이 원장 의존형이라 사는 쪽 눈에는 시설값 언저리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시장이 박한 게 아니라 매물들이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그러니 다르게 지은 병원은 드물고, 드문 것은 값을 받는다.

허무는 방향 감각이다

이 허무는 대체로 벌 만큼 번 다음에 온다. 개원 초에는 생존이 전부라 이 질문이 없다. 그래서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기 쉽지만, 정체는 방향 감각이다. 지금까지는 매출, 규모, 안정이라는 좌표가 갈 곳을 알려줬다. 어느 높이에 오르면 그 좌표계가 수명을 다한다. 그때 필요한 것이 얼마를 버는가에서 무엇이 남는가로 옮겨 가는 새 좌표계다. 허무는 다음 층으로 올라갈 준비가 됐다는 신호다.

십일 년이 빈손이라는 계산도 틀렸다. 어떤 환자가 오고, 어떤 말이 통하고, 어떤 직원이 오래 남고, 어떤 실수가 반복되는지. 이 병원만의 십일 년 치 지식이 쌓여 있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 원장님 머릿속이라는 비인출 계좌에 들어 있다는 것뿐이다. 인출 방법은 적는 것이다.

햄버거 기계를 발명한 것은 맥도날드 형제였다. 그런데 부는 크록에게 갔다. 형제는 그 발명품을 좋은 가게 한 채로 봤고, 크록은 그것을 자산으로 봤다. 원장님은 지금 좋은 진료라는 발명품을 가진 형제의 자리에 있다. 다행히 크록이 따로 올 필요는 없다. 발명가와 건축가가 같은 사람이면 된다. 진료할 때는 형제처럼, 병원을 볼 때는 크록처럼. 그 두 눈의 겸직이 이 책이 그리는 원장의 모습이다.

이 질문을 매일 꺼내 쓰는 법

팔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서랍에 넣어두는 질문이 아니라 매일의 건축 기준이다. 새 절차를 만들까 고민될 때, 이것이 있으면 병원의 값이 오르는가. 일을 실장에게만 맡길까 문서로 만들까 고민될 때, 인수자가 실장 머릿속을 살 수 있는가. 남는 돈을 어디 쓸까 고민될 때, 이 지출은 감가상각인가 축적인가. 개인기로 밀어붙일까 고민될 때, 개인기는 나와 함께 나가고 방식은 남는다.

보상은 십 년 뒤에만 오지 않는다. 기준이 문서가 되면 그 질문들이 원장님에게 오지 않고, 절차가 기록되면 신입 교육에서 원장님 시간이 빠진다. 원금은 십 년 뒤에 찾더라도 이자는 다음 달부터 시간으로 지급된다. 오늘 하루를 이 눈으로 분류해보자. 진료 몇 건은 소득이 됐고 환자에게 가치가 갔다. 직원 질문에 답한 열몇 번은 내일 또 반복될 소모다. 그 질문 중 하나를 기준으로 만들어 공유했다면, 그 십 분만이 오늘의 축적이다.

지금까지 원장님은 병원의 일꾼이자 소비자였다. 매일 노동을 넣고 소득을 꺼내 쓰는 관계. 이제 관계가 하나 더해진다. 건축주다. 이번 달에 병원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매출 질문 옆에 나란히 놓는 습관. 그 눈이 생기면 전화 기준 한 장이 잡무가 아니라 축적이 되고, 숫자 기록이 귀찮음이 아니라 저축이 된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병원은 내 일터다.
↓
가질 생각병원은 내가 짓고 있는 자산이다. 팔 생각이 없어도, 팔 수 있게 짓는다.
이번 주에 할 것 · 해낸 것은 눌러 표시하세요

이 장을 덮은 날 밤의 오 분

2부를 닫기 전에,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실행을 드린다. 이 장을 덮은 날 밤에 두 가지만 하자. 합쳐서 오 분이다.

  1. 달력을 연다. 다음 주에서 두 시간짜리 칸 하나를 고른다. 요일과 시각을 확정한다.
  2. 데스크에 카톡을 보낸다. 다음 주부터 매주 그 시간에는 예약을 잡지 말아달라고, 병원 정비하는 시간이라고 이유까지 적어서.

다음 주부터 매주 ○요일 ○시부터 두 시간은 예약을 잡지 말아 주세요. 병원 정비하는 시간입니다.

경영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전부 맞다. 그래서 시간은 여유에서 꺼내는 게 아니라 달력에서 꺼내는 것이다. 다음 주부터 매주 그 두 시간이 원장님이 병원 위에서 일하는 시간이다. 3부의 일곱 기둥은 전부 그 칸 안에서 세워진다. 이 책에서 읽은 모든 것이 이 칸 안에서 실현되거나, 이 칸이 없어서 증발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이제 관점의 전환 두 개가 끝났다. 병원이 파는 것은 경험이라는 것, 병원 자체가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공사를 할 시간이 달력에 생겼다. 3부에서는 확보한 그 두 시간에 무엇을 어떤 순서로 짓는지를 본다. 그 전에 먼저 풀어야 할 질문이 있다. 뭘 해도 그때뿐입니다. 지속이 안 됩니다.

PART
03

병원 재건축, 일곱 개의 기둥

Q09 — Q16
09
QUESTION 09 / 16

뭘 해도 그때뿐입니다. 지속이 안 됩니다

여기서부터 이 책의 3부, 병원 재건축이 시작된다. 그 책의 후반부는 사업을 다시 짓는 일곱 단계의 전략이다. 나는 그것을 일곱 개의 기둥으로 옮겨 원장님 병원에 세워보려 한다. 앞으로 여덟 장에 걸쳐 차례로 세울 기둥은 이렇다.

기둥 장 붙잡는 물음
인생 10장 병원이 잘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
완성 11장 어디까지 가야 성공한 겁니까
자리 12장 직원 네 명인데 조직도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경영 13장 좋은 실장만 오면 될 것 같은데, 안 옵니다
사람 14장 요즘 직원들은 주인의식이 없습니다
환자 15장 광고비만 나가고 신환은 그대로입니다
시스템 16장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병원은 차갑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둥보다 먼저 꺼내야 할 것이 있다. 바퀴다. 기둥이 무엇을 세울지라면 바퀴는 어떻게 세울지다. 그 책이 재건축의 방법론으로 내놓는 것도 도구가 아니라 도는 바퀴, 곧 혁신·수량화·조직화의 반복이다. 이 장을 바퀴로 여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문제를 먼저 풀지 않으면 앞으로 쏟아질 도구들이 전부 그때뿐이 되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랬다. 지금까지 안 해본 게 없다. 친절 교육도 했고 회의 제도도 만들었고 리콜도 강화했다. 그런데 전부 몇 주 가다 흐지부지됐다. 이제는 뭘 시작하기가 겁나고, 직원들도 어차피 또 흐지부지될 거라는 눈치다.

사업 개발이라는 바퀴

저자는 사업을 좋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으로 세 박자의 반복을 제시한다. 이 세 단어가 재건축의 엔진이다.

박자 뜻 병원의 예
혁신 더 나은 방법을 시도한다. 방향은 고객의 경험이 좋아지는 쪽 전화 첫인사 한 줄, 안내 순서 하나
수량화 그 시도가 결과를 바꿨는지 숫자로 확인한다 인사말을 바꾸기 전후의 예약 전환
조직화 숫자로 검증된 방법을 표준으로 굳혀 모두가 매번 하게 한다 스크립트에 박고, 기준에 넣고, 신입에게 가르친다

저자는 수량화 대목에서 단호하다. 숫자 없는 혁신은 취향의 교체일 뿐이다. 재지 않으면 좋아진 건지 그냥 달라진 건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이 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오늘의 표준은 다음 혁신이 나올 때까지의 잠정 챔피언일 뿐이다. 세 박자가 도는 한, 사업은 오너의 감이 아니라 검증된 표준의 축적으로 자란다.

원장님의 시도들이 그때뿐이었던 이유

지난 시도들을 이 바퀴에 대보면 어디서 끊겼는지 바로 보인다. 친절 교육은 혁신이었다. 그런데 무엇으로 쟀는가. 재지 않았다. 효과가 있는지 아무도 모르니 열기가 식자 근거 없이 시작된 것이 근거 없이 끝났다. 수량화가 빠진 것이다. 리콜 강화도 첫 달은 다들 열심히 전화했다. 그러나 그게 누구의 자리였고 어떤 기준이었고 어디에 기록됐는가. 담당이 바쁜 주에 한 번 거르고, 두 번 거르고, 사라졌다. 조직화가 빠진 것이다.

원장님의 시도들은 전부 혁신 한 박자로만 달렸다. 혁신은 시작의 에너지고, 수량화는 계속할 이유고, 조직화는 사람이 바뀌어도 남는 몸이다. 뒤의 두 박자가 없는 혁신은 정의상 그때뿐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뭘 해도 그때뿐이라는 문장의 정확한 번역은 이것이다. 우리 병원에는 시작은 있는데 검증과 정착의 장치가 없다. 문제는 원장님의 끈기가 아니라 바퀴의 부재였다.

한 바퀴 돌려보면, 진료와 같은 구조다

전화 예약 전환으로 한 바퀴를 돌려보자. 데스크와 상의해 첫인사를 "네,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에서 "안녕하세요, 어디가 불편해서 전화 주셨어요"로 바꾼다. 그리고 전화 문의 대비 예약 건수를 센다. 데스크에 바를 정 자 종이 한 장이면 된다. 바꾸기 전 두 주와 바꾼 뒤 두 주를 나란히 놓는다. 전환이 올랐으면 그 멘트를 응대 기준 문서에 박고 신입 교육에 넣는다. 이제 그 개선은 사람이 아니라 병원의 것이다. 안 올랐으면 버리고 다음 시도로 간다. 그 멘트는 우리 환자에게 안 통한다는 지식 하나를 얻은 것이다.

낯설게 느껴진다면, 원장님이 매일 하는 일을 떠올리면 된다. 진단하고, 치료 계획을 세우고, 시술하고, 경과를 본다. 경과가 좋으면 유지하고 나쁘면 계획을 고친다. 가설, 개입, 측정, 조정. 임상의 기본 사이클이다. 원장님은 이 바퀴의 초보자가 아니라 가장 엄격한 버전을 훈련받은 사람이다. 그 훈련을 병원이라는 환자에게 쓴 적이 없었을 뿐이다. 병원을 한 명의 환자로 보면 경영이라는 낯선 단어가 진료라는 익숙한 일이 된다.

작은 병원일수록, 의욕보다 구조로

우리는 작은 병원인데 이런 게 필요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바퀴는 규모를 타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병원일수록 빨리 돈다. 큰 조직은 하나를 바꾸는 데 회의와 결재가 필요하지만 다섯 명 병원은 오늘 정하면 내일 바뀐다. 작은 병원의 진짜 약점은 자원이 아니라 기억이다. 뭘 해봤고 뭐가 통했는지 남지 않아 같은 자리를 맴돈다. 바퀴는 작은 몸집에 기억을 달아준다.

세미나를 다녀오면 사흘은 의욕이 넘치다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법칙도 여기서 풀린다. 의욕은 연료이고 연료는 쓰면 준다. 의욕에만 실린 변화의 수명이 사흘인 것은 원장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누구의 의지든 그 정도라서다. 수량화가 있으면 계속할 이유가 감정이 아니라 숫자에서 나오고, 조직화가 있으면 유지하는 힘이 결심이 아니라 표준에서 나온다. 의욕은 시동을 걸 때만 쓰고, 달리는 건 엔진이 한다. 그러니 이 책을 덮은 날의 의욕으로 결심을 하지 말고 바퀴 하나를 걸어두기 바란다.

혁신은 작게, 재는 것은 선언이다

혁신이라는 단어가 크게 들리면 바퀴의 문턱이 높아진다. 커야 한다고 믿으면 혁신은 일 년에 한 번 큰맘 먹고 하는 연례행사가 되고, 작아도 된다고 믿으면 매주 굴리는 일상이 된다. 성과는 대체로 큰 한 번이 아니라 작은 백 번에서 온다. 전화 전환, 대기 이탈, 동의율, 리콜 재방문이 조금씩 좋아지면 환자의 여정이 이어져 있어서 그것들은 곱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나는 혁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재볼 가치가 있는 모든 작은 변화.

측정에는 이상한 마법도 있다. 재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안 바꿨는데 숫자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세는 순간 그것이 중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병원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말이 아니라 무엇을 세는지로 읽는다. 지금까지 세어온 숫자가 매출 하나였다면, 병원은 십 년간 매출만 중요하다고 방송해온 셈이다. 무엇을 잴지 고르는 일은 그래서 병원의 가치 선언이다.

바퀴가 안전해야 바퀴가 돈다

수량화에는 경고 딱지가 붙어 있다. 숫자가 나쁠 때 사람을 찾는 유혹이다. 누가 그런 거냐고 묻는 순간, 다음 달부터 실제가 아니라 기록이 좋아진다. 곤란한 건은 집계에서 빠지고 애매한 건은 유리하게 분류된다. 그래서 규칙이 필요하다. 숫자는 사람을 채점하는 도구가 아니라 상황을 보는 도구다. 나쁜 숫자 앞에서 묻는 말은 누구 탓이냐가 아니라 무엇 때문이냐다. 바퀴의 연료는 좋은 숫자가 아니라 정직한 숫자다.

실패한 바퀴의 처리도 같은 원리다. 숫자가 그대로면 원상 복구하고 기록을 남긴다. 이 멘트는 효과 없었음. 조직에는 기억이 없어서 기록 없는 실패는 반드시 반복된다. 시도한 직원에게는 실패가 아니라 확인이었다고, 안 되는 방법 하나를 발견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준다. 실패가 안전한 병원에서만 시도가 계속된다.

이 안전이 몇 바퀴 확인되면 직원의 입에서 "원장님, 안내문 위치를 바꿔보면 어떨까요. 한번 재볼까요"라는 말이 나온다. 개선의 엔진이 원장님 한 사람에서 조직 전체로 복제된 날이다. 조건은 둘뿐이다. 실패한 시도를 벌주지 않는 것, 채택된 아이디어의 주인을 분명히 밝혀주는 것. "그 안내문 개선, 김선생 아이디어였잖아요." 이 한마디가 다음 아이디어 열 개를 부른다.

한 번에 하나, 조용히, 끝까지

지속이 안 되는 병원의 또 다른 공통점은 시작의 과식이다. 세미나 다녀온 주에 다섯 가지를 동시에 선포하면 다섯 개가 전부 어중간해지고, 어중간한 것들은 전부 죽는다. 직원들은 원장님의 선포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배운다. 한 번에 한 바퀴만 건다. 그 바퀴가 표준이 된 다음에 다음 바퀴다. 한 달에 하나면 일 년에 열둘이다. 지난 삼 년간 완주한 개선이 몇 개였는지 세어보면 열둘이 얼마나 큰 숫자인지 알게 된다.

직원들의 그 눈치는 냉소가 아니라 정확한 예측이다. 지난 몇 번이 실제로 흐지부지됐으니까. 이 냉소는 "이번엔 진짜야"라는 선언으로는 못 녹인다.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한다. 발표하지 말고 시작한다. 조용히 데스크와 바를 정 자를 시작하고, 삼 주 뒤 결과가 나오면 그때 처음 공유한다. "이렇게 해봤더니 예약이 이만큼 늘었습니다. 이 멘트, 이제 표준으로 할게요." 선언 다음의 소멸이 아니라 조용한 실행 다음의 결과를 두세 번 목격하면 눈치가 바뀐다. 신뢰는 선언의 크기가 아니라 완주의 횟수로 쌓인다.

조직화 없는 십 년, 바퀴가 도는 오 년

십 년 된 병원이라면 그동안 발견한 요령이 수백 개일 것이다. 이 환자 유형에는 이런 설명이 먹힌다, 이 시간대 예약은 이렇게 잡아야 안 밀린다. 그 수백 개는 지금 사람들 몸에 있고, 몸에 있는 지식은 그 몸과 함께 퇴근하고 퇴사한다. 십 년 된 병원인데 신입이 오면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는 것, 그것이 조직화 없는 십 년의 결말이다. 조직화는 그 지식을 몸에서 병원으로 옮기는 일이다. 앞 장에서 말한 자산이 실제로 쌓이는 방식이 이것이다.

한 달에 하나면 오 년에 육십 개의 검증된 개선이 쌓인다. 전화 멘트 하나, 상담의 흐름, 리콜의 시점이 전부 취향이 아니라 기록 위에 선다. 새 직원이 왜냐고 물으면 "재봤더니 이게 낫더라고요"라는 답이 있다. 옆 병원은 겉을 베낄 수 있지만 오 년치 실험의 기록과 그것을 계속하는 문화는 베끼지 못한다. 바퀴는 느리다. 그래서 바퀴로 쌓은 것은 아무도 빨리 따라오지 못한다.

원장이 달라지는 지점

지금까지 원장님은 시도의 사람이었다. 좋아 보이는 걸 시작하고, 열기로 밀고, 식으면 다음 걸 찾았다. 이제 달라질 것은 일의 단위다. 시도가 아니라 바퀴가 단위가 된다. 시작할 때 이미 무엇으로 잴지와 어떻게 남길지를 함께 설계하고, 완주 전에는 새 바퀴를 걸지 않는다. 기술자는 열심히를 반복하고 경영자는 바퀴를 돌린다. 같은 에너지인데 한쪽은 흩어지고 한쪽은 쌓인다.

시작을 가볍게 해줄 사실도 하나 있다. 원장님 병원에도 완주된 바퀴가 이미 있다. 예약 시스템이든 소독 절차든 지금 안정적으로 도는 것들은 언젠가 누군가 시도했고, 효과를 확인했고, 방식으로 굳어진 것들이다. 없던 능력을 이식하자는 게 아니라 가끔 돌던 바퀴를 의도적으로, 이름 붙여, 계속 돌리자는 것이다.

삼 주짜리 첫 바퀴

주 할 일 지킬 것
첫째 주 기준선 측정.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지금의 숫자만 센다 기준선 없는 개선은 개선이었는지 알 수 없다
둘째 주 정한 하나를 바꾸고 같은 방식으로 센다 두 개를 같이 바꾸면 무엇이 효과였는지 모른다
셋째 주 판정. 좋아졌으면 문서에 박고 공유, 그대로면 원상 복구 어느 쪽이든 결과를 직원들에게 알린다

첫 바퀴 후보는 재기 쉽고 결과가 빠른 순서로 이렇다. 전화 문의 대비 예약 전환, 예약 대비 실제 내원(노쇼율), 리콜 연락의 실행률과 재방문율. 상담 후 동의율은 예민한 숫자라 숫자 문화가 안전하다는 게 확인된 두세 번째 바퀴로 미룬다. 원칙은 하나다. 새 일을 벌여 재는 게 아니라, 매일 하는 일에 눈금을 붙이는 것부터.

이 바퀴에는 방향이 필요하다. 무엇을 위해 돌리는가. 그 책은 여기서 가장 뜻밖의 장으로 넘어간다. 재건축의 첫 기둥을 사업 바깥, 원장님의 인생에 박는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병원을 바꿀 큰 한 방이 있다 · 우리는 뭘 해도 안 된다
↓
가질 생각큰 한 방은 없다. 작게 바꾸고, 숫자로 확인하고, 표준으로 박제하는 바퀴의 반복이 있을 뿐이다

두 생각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 방을 믿는 사람이 한 방이 안 터지면 우리는 안 된다로 넘어간다. 바퀴를 믿는 사람에게는 실망이 구조적으로 없다. 성공한 시도는 표준이 되고 실패한 시도는 지식이 된다.

이번 주에 할 것 · 해낸 것은 눌러 표시하세요
10
QUESTION 10 / 16

병원이 잘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

이 책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 장이다. 사연은 이랬다. 남들 기준으로는 성공했다. 매출도 안정됐고 병원도 자리 잡았다. 그런데 행복하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하겠다. 병원이 잘되면 다 풀릴 줄 알았는데, 잘된 다음에도 나는 그대로다. 이제 뭘 위해 뛰는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받아 온 질문의 대부분은 병원을 물었다. 신환을, 직원을, 매출을. 인생을 묻는 질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머지 질문들의 바닥을 파보면 결국 이 질문이 나온다. 그 신환과 직원과 매출이 전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바닥의 질문에 답이 서면 위의 질문들은 절반쯤 풀린 채로 시작된다.

재건축의 첫 기둥은 병원 밖에 있다

그 책의 후반부는 사업을 다시 짓는 일곱 단계의 전략이다. 조직, 인력, 마케팅, 시스템. 예상되는 목록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 모든 전략 앞에, 전부의 기초로 하나를 먼저 박는다. 저자가 평생의 목적이라고 부르는 것. 사업의 목적이 아니라 오너라는 사람의, 인생의 목적이다.

논리는 이렇다. 사업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사업은 오너의 인생이라는 더 큰 것에 봉사하는 도구다. 인생의 그림이 없는 사업은 기초 없는 건물이고, 아무리 높이 올려도 무엇을 위해 서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사업 계획 대신 이런 것을 묻는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싶은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매일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돈은 얼마나,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내가 있었다는 것이 무엇으로 남기를 바라는가. 경영서를 읽다 갑자기 인생을 물으니 나도 처음엔 당황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이 배치가 정확하다. 이 사연이 그 증거다.

왜 우리는 이 질문을 한 번도 안 했을까

인생의 목적이라는 말에 몸이 배배 꼬이는 원장님도 있을 것이다. 이유가 있다. 학창 시절엔 성적이 목적을 대신했다. 의대에 가는 것, 가서는 국시, 그다음엔 수련, 그다음엔 개원. 늘 다음 관문이 정해져 있어서 목적을 스스로 정할 필요가 한 번도 없었다.

개원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지나자 처음으로 다음이 정해지지 않은 인생이 시작됐다. 그 빈자리에 매출이 들어왔다. 숫자가 나오고, 오르면 잘한 것이고, 남과 비교되는 새 성적표. 그러니 사연 속 허무는 성적표 인생의 만기다. 사십 년 넘게 남이 출제한 시험을 쳐왔는데 이제 시험지가 나오지 않는다. 출제자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어색한 게 당연하다. 다만 이 출제만큼은 아무도 대신해주지 못한다.

성공한 다음에 무너지는 사람들

개원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데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목적 없이 성공한 사람은 성공 앞에서 무너진다. 버티게 하던 것은 사실 결핍이었다. 대출, 불안정, 증명 욕구. 성공이 그 연료를 없애버리면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흐려진다. 그 공백에 어떤 원장은 다시 절박해지려고 무리한 확장을 시작하고, 어떤 원장은 골프와 술이 늘고, 어떤 원장은 이유 모를 우울에 잠긴다.

결핍은 연료로 쓸 수 있지만 평생 연료일 수는 없다. 어느 시점부터는 목적이 이어받아야 한다. 지금 병원이 어려운 원장님께는 배부른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결핍으로 달리는 지금이 다음 연료를 준비할 때다.

번아웃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무너지는 사람과 버티는 사람이 갈리고, 일이 줄어든 뒤에 무너지기도 한다. 사람을 태우는 건 노동의 양이 아니라 의미 없는 노동의 양이다. 번아웃은 에너지의 고갈이기 전에 이유의 고갈이다. 그래서 이 기둥은 정신적 사치가 아니라 원장이라는 직업의 안전 장비다.

순서가 뒤집혀 있었다

"병원이 잘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는 문장에는 병원이 먼저고 삶이 나중이라는 순서가 들어 있다. 개원할 때 자리와 규모와 대출과 장비는 몇 달을 계획했다. 그런데 그 병원으로 어떤 삶을 살지는 계획이 아니라 가정을 했다. 삶은 병원의 부산물이 아니다. 계획되지 않은 것은 도착하지 않는다.

더 아픈 것도 있다. 목적지 없는 병원은 방향을 밖에서 빌려온다. 옆 병원보다 크게, 동기들보다 잘되게, 작년보다 많이. 전부 비교급이고, 비교급에는 도착이 없다. 그래서 저자의 처방은 순서의 교정이다. 삶의 그림이 먼저다. 병원은 그 그림을 실현하는 도구이고, 도구는 목적에 맞게 설계된다.

인생의 그림이 병원을 설계한다

어떤 원장의 그림이 이렇다고 해보자. 아이들이 크는 동안 저녁을 함께 먹는 아버지로 살고 싶다. 몸을 상하지 않고 예순까지 진료하고 싶다. 지역에서 신뢰받는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

인생의 그림 병원에서 정해지는 것
저녁을 함께 먹는 아버지 진료 마감 시간. 야간 확장은 매출이 늘어도 오답
예순까지 진료 몸을 갈아 넣는 구조는 반드시 고친다. 위임과 시스템은 필수
신뢰받는 의사 단기 매출과 과잉의 유혹 앞에 기준이 선다

고민했을 결정들이 그림 아래에서는 저절로 풀린다. 앞에서 완성된 병원의 그림이 결정을 거르는 필터라고 했는데, 그 그림을 그리는 펜이 인생의 그림이다. 반대도 성립한다. 큰 조직을 일구는 것이 그림인 원장에게는 저녁 없는 몇 년이 희생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 그 크기가 누구의 그림에서 나왔느냐다. 내 그림에서 나온 고생은 견뎌지고, 남의 그림을 좇는 고생은 사람을 비운다.

가족의 그림과 겹쳐보기

원장님의 그림에는 공동 소유자가 있다. 배우자와 아이들이다. 병원이 원장님을 삼키는 동안 그들은 자기 그림을 원장님 없이 그려왔을 수 있다. 그래서 언젠가 저녁 식탁에서 한 번 물어보기를 권한다. 우리 오 년 뒤에 어떻게 살고 싶어.

이 대화는 둘을 준다. 하나는 교정이다. 가족을 위해서라고 믿고 달려온 방향이 정작 가족이 원하는 방향이 아닐 수 있다. 더 큰 집보다 더 이른 저녁을 원했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동맹이다. 그림을 공유한 가족은 시간을 지켜주고, 힘든 구간에서 왜 이 고생을 하는지 함께 기억해준다. 혼자 그린 그림은 결심이고, 가족과 겹친 그림은 계약이다. 계약이 힘이 세다.

저자가 이 장을 다른 어떤 전략보다 앞에 둔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수만 명의 오너를 봐온 사람의 결론이 기법이 아니라 이 질문이었다는 것. 사업을 고치러 왔다가 인생을 만나는 것. 그 책이 사십 년을 살아남은 이유가 여기 있고, 이 책이 결국 하려는 이야기도 이것이다.

장례식에서 거꾸로 보면

저자의 사고 실험이 하나 있다. 당신의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가. 병원 매출이 대단했다는 문장은 아닐 것이다. 좋은 의사였지, 좋은 아버지였고 좋은 남편이었지, 저 사람 덕에 내 인생이 달라졌어. 그 문장들이 진짜 목적이다. 지금 병원의 하루가 그쪽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이 질문이 아플수록 좋은 날이다. 방향은 살아 있는 동안에만 바꿀 수 있다.

목적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만난 수만 명의 오너가 실제로 도달한 목적은 대부분 소박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 매일 아침이 두렵지 않은 것,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것. 목적의 자격은 크기가 아니라 진짜냐다. 새벽에 혼자 떠올렸을 때 힘이 나는 문장이면 된다. 오늘 쓰는 문장은 최종본이 아니라 초판이다.

병원 홈페이지의 미션 문구와는 층이 다르다. 미션은 병원이 세상에 하는 약속이고, 목적은 원장이 자기 인생에 하는 약속이다. 인생의 목적에서 자라지 않은 미션은 어느 병원에 붙여도 되는 장식이 된다. 지울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문장이 내 인생의 그림과 이어져 있는지 대보고, 이어져 있지 않다면 언젠가 아래층부터 다시 쓰면 된다.

목적이 있는 원장의 월요일

목적 없는 원장의 월요일은 방어로 시작한다. 무슨 일이 터질까, 지난주보다 매출이 어떤가. 걱정과 비교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쓰면 준다. 목적 있는 원장의 월요일은 같은 업무로 시작해도 좌표가 다르다. 이번 주는 그 그림에 이만큼 가까워지는 주다. 환자는 말로 설명은 못 해도 쫓기는 원장과 어딘가로 가는 원장의 진료실 공기를 느끼고, 직원들은 더 정확히 안다. 목적은 원장 개인의 내면 문제 같지만 병원 전체에 흐르는 전류의 문제다.

돈 질문을 피하지 말 것

네 질문 중 다들 건너뛰고 싶어 하는 것이 돈은 얼마나 필요한가다.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 돈의 목표는 자동으로 무한대가 된다. 도착이 없으니 병원의 크기도 진료량도 영원히 더 쪽으로 밀리고, 삶의 그림은 그 더에 밀려난다. 생활비, 교육, 노후, 여유를 적어 원하는 삶의 실제 가격표를 계산해보면 대부분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무한대가 아니다. 그 숫자가 나와야 병원의 목표 매출이 처음으로 의미를 갖는다. 남보다 많이가 아니라 이 삶에 충분히. 충분을 아는 원장만이 다음 장의 질문,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에 자기 답을 가질 수 있다.

사라의 이모의 부엌

들어가며에서 만난 사라를 기억할 것이다. 저자는 사라에게 가게를 어떻게 고칠지부터 말하지 않았다. 어떤 삶을 원했는지, 이모의 부엌에서 무엇을 느꼈길래 그 길로 왔는지 물었다. 한참 만에 사라가 답한다. 그 부엌에는 돌봄이 있었다고. 파이는 도구였고 자기가 사랑한 건 사람을 돌보는 느낌이었다고. 무엇을 위한 가게인지 정해지자 비로소 어떤 가게여야 하는지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원장님의 이모의 부엌은 무엇이었는가. 처음 발치에 성공하고 환자가 고마워하던 순간일 수도, 아픈 가족을 보며 의사를 꿈꾸던 밤일 수도 있다. 그 장면 안에 원장님이 사랑한 것의 정체가 있다. 목적을 찾는 일은 새것을 발명하는 게 아니라 대개 그 첫 장면을 되찾는 일이다.

원장이 달라지는 지점

이걸 개원 전에 들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개원 전의 원장님은 이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목적이 왜 필요한지는 목적 없이 달려본 사람만 안다. 그리기에 늦은 나이는 없고, 그리기에 충분히 아는 나이가 있다. 원장님은 지금 그 나이에 있다.

지금까지 원장님 인생의 질문은 병원이 잘되려면이었다. 이제 그 위에 한 층이 생긴다. 잘된다는 게 나에게 무엇인가. 성공을 정의하는 권한이 시장과 비교에서 원장님 인생으로 넘어온다. 구조를 다 고쳐도 이 질문이 없으면 더 효율적인 감옥이 될 뿐이다. 이 질문이 있어야 같은 건물이 감옥이 아니라 작업실이 된다.

이 질문을 책의 한가운데 둔 이유도 이제 말할 수 있다. 앞의 아홉 장은 이 질문을 위한 준비였다. 관점을 바꾸고 바퀴를 배운 것은 이 그림을 실행할 손발을 갖추는 일이었다. 뒤의 여섯 장은 이 질문의 실행이다. 목표도 자리도 사람도 시스템도 이 그림에서 뻗어 나가는 가지들이다.

다음 장은 이 그림과 병원 사이의 다리다. 그 삶을 위해 병원은 얼마를 벌고, 어떤 크기이고, 언제까지 무엇이 되어 있어야 하는가.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병원이 잘되면 내 삶도 풀릴 것이다
↓
가질 생각내 삶의 그림이 먼저다. 병원은 그 그림에 봉사하는 도구이고, 도구는 목적에 맞게 설계한다

열여섯 개의 전환 가운데 가장 근본이 이것이다. 다른 열다섯 개가 병원을 고치는 이야기라면 이것은 병원을 왜 고치는지의 이야기다. 이 책의 모든 기준과 시스템과 바퀴의 최종 동력원이 이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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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11 / 16

어디까지 가야 성공한 겁니까

인생의 그림에서 병원으로 내려오는 다리, 두 번째 기둥이다. 사연은 이랬다. 목표가 뭐냐고 물으면 사실 없다. 그냥 더 잘되는 것. 월 매출이 얼마면 만족하겠냐고 스스로 물어도 "지금보다 많으면"이라는 답밖에 없다.

솔직한 사연이다. 그리고 이 "지금보다 많으면"이 개원가의 표준 목표라는 것이 이 장의 출발점이다. 저자는 이 상태를 정확히 겨냥한 기둥을 하나 세운다. 완성의 정의다.

끝이 정의되지 않은 게임의 피로

저자의 통찰은 이렇다. 사업에는 완성의 정의가 필요하다. 이 사업이 다 지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를 숫자와 문장으로 미리 정해두는 것이다. 이것이 기둥씩이나 되는 이유는 끝이 없는 게임이 사람에게 하는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끝이 정의되지 않은 게임에서는 어떤 점수도 충분하지 않다. 월 매출이 얼마가 되든 다음 달 목표는 그보다 많이다. 이기는 날이 구조적으로 없다. 축구가 구십 분이라는 끝이 있어서 이길 수 있듯, 끝이 있어야 승리도 있다. 끝이 없으면 모든 지출과 노동도 정당화된다. 브레이크의 근거가 없으니 앞 장의 인생 그림이 있어도 병원이 계속 삶의 시간을 잠식한다. 병원의 더는 언제나 삶의 덜이다. "지금보다 많으면"은 목표가 아니라 목표의 부재다. 그 부재가 십 년을 잘해오고도 아직 멀었다는 만성 미완성감을 만든다.

지금보다 더가 목표가 된 경위

원장님이 게을러서 목표를 안 세운 것이 아니다. 개원 초에는 목표가 선명했다. 손익분기, 대출 상환, 생존. 세상이 대신 정해준 목표들이었다. 그것들을 통과하고 나니 아무도 다음 목표를 주지 않았다. 학교처럼 다음 학년이 있는 것도, 회사처럼 다음 직급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빈자리에 관성이 들어왔다. 하던 대로, 다만 조금 더.

주변은 그 관성을 강화한다. 동기 모임의 숫자들, 누구네 매출 소문, 영상 속 성공 사례들이 전부 더를 속삭인다. 어디까지냐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남이 답해줄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목표 없음은 원장님의 결함이 아니라 이 직업 경로의 구조다. 생존 목표를 졸업한 뒤의 목표는 스스로 출제해야 하는데, 그 출제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완성은 인생 그림에서 역산한다

완성을 정의하는 순서가 생명이다. 앞 장에서 그린 인생의 그림을 꺼내 거기서 병원에 필요한 것을 거꾸로 계산한다. 원하는 삶의 연간 비용에서 병원이 벌어야 할 이익이, 이익에서 필요한 매출이, 매출에서 진료 구조와 병원의 크기가 나온다. 원하는 하루의 모습에서는 그 매출을 몇 시간의 진료로 만들어야 하는지가 나온다. 저녁이 있는 삶이 그림에 있다면 원장님의 주당 진료 시간에 상한이 생긴다.

이 역산의 끝에 나오는 문장이 우리 병원의 완성이다. 월 매출 얼마, 원장 진료 주 몇 시간 이내, 직원 몇 명이 각자의 자리에서, 원장 호출이 하루 몇 번 이내인 운영, 소개 환자 비중 얼마 이상. 이 상태가 되면 이 병원은 다 지어진 것이다.

이 문장이 생기는 순간 두 가지가 달라진다. 첫째, 도착이 생긴다. "아직 멀었다"가 "칠십 퍼센트 왔다"로, 미완성의 감각이 공정률의 감각으로 바뀐다. 둘째, 그만해도 되는 것들이 보인다. 완성에 기여하지 않는 확장, 필요 없는 투자, 그림 밖의 기회들. 끝이 정의되면 거절의 근거가 생긴다. 성장하지 않을 권리는 완성을 정의한 사람에게만 있다.

역산의 실제 순서

말로만 들으면 막연하니 계산 순서를 칸으로 옮긴다.

칸 무엇을 적나 어떻게 나오나
첫째 인생의 연간 가격표 생활비, 교육, 노후 저축, 여유와 취미, 예비. 일 년에 얼마면 그린 삶이 돌아가는가
둘째 원장이 가져가야 할 연 소득 첫째 칸에 세금을 얹는다
셋째 병원의 필요 이익 둘째 칸이 곧 셋째 칸이다. 여기에 병원에 재투자할 몫을 정해 얹는다
넷째 필요 매출 셋째 칸을 우리 병원의 이익률로 나눈다
다섯째 그 매출의 구성 지금의 진료 구성과 단가로 그 매출을 내려면 원장이 몇 시간 진료해야 하는가

셋째 칸에서 매년 병원에 남길 몫과 내 삶으로 가져올 몫의 비율을 미리 정하는 것도 처음 해보는 결정일 것이다. 넷째 칸에서 이익률을 모른다면 그것부터가 발견이다. 세무사에게 최근 일 년치 기준으로 물어보면 된다.

다섯째 칸에서 대부분 중요한 발견을 한다. 필요한 진료 시간이 인생 그림의 시간 상한과 충돌한다는 발견이다. 이 충돌이 계산의 진짜 수확이다. 푸는 길은 두 갈래뿐이다. 시간당 산출을 올리거나, 원장이 아닌 곳에서 나오는 매출 구조를 만들거나. 동의율, 진료 구성, 위임, 시스템. 이 책에서 다룬 이야기들이 전부 이 충돌의 해법이었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난다.

부부가 함께, 그리고 남의 결승선

첫째 칸은 혼자 채우면 반쪽이다. 가계의 실제 숫자는 배우자가 더 정확히 아는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그 가격표의 삶을 함께 살 사람이다. 혼자 계산한 충분과 부부가 합의한 충분은 다른 숫자일 수 있다. 추상적인 인생 이야기는 어색해도 "노후에 얼마 필요할까"는 꺼내기 쉽다. 숫자로 시작해서 삶으로 끝나는 대화, 이 계산의 숨은 설계가 그것이다. 한 번 해둔 계산은 장비 투자, 인력 충원, 광고비 같은 거의 모든 돈 결정에 다시 쓰인다. 이 지출이 완성에 복무하는가. 평생 쓰는 잣대가 생긴다.

계산을 해보면 가끔 "지금 매출로도 충분하네"라는 결과가 나온다. 생각보다 흔하다. 그러면 그동안 뭘 향해 그렇게 뛰었나 싶어진다. 남의 결승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동기의 매출, 성공담, 업계 평균. 내 삶에 필요 없는 높이를 몇 년의 저녁과 주말을 내고 뛰어온 것이다. 아프지만 해방이기도 하다. 그 원장의 다음 목표는 더 버는 법이 아니라 같은 매출을 더 적은 시간과 더 튼튼한 구조로 만드는 법이 된다.

소망과 설계도를 가르는 검증

그 책에서 이 기둥의 이름은 전략적 목표다. 그런데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것은 목표보다 그 앞의 검증이다. 완성의 그림을 그린 뒤 반드시 물으라고 한다. 이 사업은 그 그림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회인가. 병원으로 옮기면 이렇다. 우리 지역의 인구와 경쟁 구도에서 그 매출이 가능한가. 지금 진료 구성으로 가능한가. 불가능하다면 진료 영역인가, 입지인가, 아니면 그림 쪽인가.

검증 없는 완성 그림은 소망이고, 검증을 통과한 그림은 설계도다. 대부분은 검증 과정에서 그림이 조금 수정되는데, 그건 실패가 아니라 그림이 현실의 옷을 입는 과정이다. 검증된 그림은 흔들리는 날 답해준다. 계산해봤고, 가능하고, 가는 중이라고.

크기가 아니라 상태로 정의한다

흔한 실수는 크기로만 정의하는 것이다. 월 매출 얼마, 끝. 그러면 원장을 갈아 넣어 도달한 매출도 완성으로 계산된다. 1부에서 본 그 감옥의 완성이다. 그래서 완성에는 그 매출이 어떤 구조에서 나오는지, 상태 항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원장의 주당 진료 시간이 들어가는 순간 매출 성장의 방법이 원장 노동 증가에서 구조 개선으로 강제 전환된다. 원장이 아니어도 되는 일이 원장에게 오지 않는 상태는 하루 호출 횟수로 잴 수 있다. 소개 환자의 비중은 광고로 부풀린 매출과 신뢰로 쌓인 매출을 구분해준다. 직원의 근속과 자리의 정착도 들어간다. 사람이 갈리는 병원의 매출은 완성이 아니라 연소다.

완성 그림이 바꾸는 결정, 없을 때 치르는 비용

옆 칸이 비었으니 넓히자는 제안이 왔다고 하자. 완성 정의가 없는 원장의 기준은 될 것 같은가, 남들도 하는가, 지금 여유가 되는가다. 전부 바깥의 기준이라 며칠을 고민하다 어중간하게 결정한다. 완성 정의가 있는 원장은 다섯 줄을 꺼낸다. 완성된 그림의 매출과 구조에 지금 평수로 충분하다면 답은 오 분 만에 나온다. 거꾸로 완성 그림에 상담 시스템이 있는데 아직 없다면, 올해의 투자는 인테리어가 아니라 거기로 간다.

이 기둥이 없을 때 원장님이 모르고 내는 비용은 넷이다.

  1. 기회비용의 혼란. 기회가 올 때마다 처음부터 며칠씩 고민한다.
  2. 과잉 투자. 결승선이 없으니 남길 이유도 없어 병원에 돈을 계속 넣는다. 병원은 커지는데 원장 개인 자산은 제자리다.
  3. 과잉 노동. 시간의 상한이 없으니 어디까지가 열심이고 어디부터가 과잉인지 선이 없다.
  4. 만성 미완성감. 얼마를 이뤄도 아직인 느낌. 돈으로 환산되지 않지만 삶의 질을 매일 갉아먹는다.

완성은 정지가 아니라 졸업이다

완성되면 그다음엔 뭐가 남느냐는 저항이 올라올 수 있다. 완성과 정지를 혼동한 것이다. 완성의 정의는 이 병원이 내 삶에 해줘야 할 몫의 정의다. 그 몫을 다하면 원장님의 에너지가 풀려나고, 그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는 인생 그림이 답한다. 더 깊은 진료, 가르치는 일, 가족과 삶, 새로운 일. 무한히 더를 향해 달리는 것은 졸업을 시켜주지 않는 학교에 갇힌 것이다. 완성 정의는 오 년쯤 뒤 다시 쓰면 된다.

결승선은 직원에게도 보여줘야 한다. 잘해도 끝나지 않는 게임은 직원도 지치게 한다. 주인의식이 없는 게 아니라 이길 수 없는 게임에 합리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가려는 상태와 지금의 공정률이 보이고, 그 그림에 직원의 몫이 들어 있으면 팀은 같은 목표를 향해 공정률을 올린다.

이 기둥은 2장의 세 사람 사이의 평화 협정이기도 하다. 끝없이 벌이고 싶은 기업가에게는 지도가, 지킬 기준이 필요한 관리자에게는 채점 기준이 생긴다. 끝없는 노동에 시달리던 기술자는 원장의 시간 상한이 들어가는 순간 처음으로 보호를 받는다.

몇 년째 제자리인 병원일수록 이 기둥이 더 필요하다. 정체의 진짜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서사의 실종이다. 정의를 해보면 지금이 사실 완성에 가깝다는 발견이거나, 완성까지의 격차가 구체적인 공사 목록으로 보이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든 막연한 무력감보다 낫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돌려받는 일

"어디까지 가야"라는 말은 성공이 저 위쪽 어딘가에 있다는 남의 지도를 전제한다. 성공의 사전적 뜻은 뜻한 바를 이룸이다. 뜻한 바가 없으면 성공은 정의상 불가능하다. 앞 장에서 뜻을 세웠고, 이 장에서 그 도착점을 정했다. 이제 원장님에게 성공은 가능한 단어가 되었다.

마라톤 선수는 결승선을 알기에 페이스를 설계한다. 결승선을 모르고 뛰면 초반에 전력 질주하다 무너지거나, 내내 아끼다 아무 데도 못 간다. 몸을 갈아 넣는 원장과 무기력하게 버티는 원장은 반대처럼 보이지만 원인이 같다. 다섯 줄은 야망의 문서이면서 페이스의 문서다. 원장이라는 직업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지금까지 원장님의 성공은 업계 평균이, 동기들이, 작년의 숫자가 채점했다. 그 채점표에는 만점이 없다. 이제 채점표의 발행처가 내 인생에서 역산된 다섯 줄로 바뀐다. 그 질문을 남에게 묻는 동안은 아무리 가도 성공이 없다. 내가 답을 정하는 순간 성공은 방향과 거리로 바뀐다.

다섯 줄의 예시

가상의 원장 한 명의 다섯 줄이다. 정답이 아니라 형식의 예시다.

줄 항목 예시
하나 돈 월 매출 얼마에 이익률 얼마. 인생 가격표에서 역산한 숫자로, 지금보다 크게 높지 않아도 된다
둘 원장의 시간 진료는 주 사 일 반, 저녁 일곱 시 전 퇴근
셋 운영 상태 원장이 진료만 보는 날, 원장 호출 하루 세 번 이내로 운영이 돌아간다
넷 사람 직원 여섯 명이 각자 자리의 결과를 책임지고, 근속 삼 년 이상이 절반을 넘는다
다섯 환자 신환의 삼분의 일 이상이 소개로 오고, 치료 후 정기 관리로 이어지는 환자가 절반을 넘는다

이 다섯 줄은 다음 분기 그 반나절, 기업가의 시간에 꺼내 갱신하면 된다. 인생 그림과 완성 정의와 분기 점검이 연결되면 병원에 처음으로 나침반과 지도와 정기 항법이 갖춰진다. 그리고 넷째 줄, 사람과 자리의 이야기가 다음 세 장에 걸쳐 이어진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목표는 지금보다 더. 막연히 더 크게, 더 많이
↓
가질 생각완성의 정의가 있어야 도착이 있고, 도착이 정의되어야 멈출 줄도 알게 된다. 얼마면 충분한지는 시장이 아니라 내 인생이 정한다
이번 주에 할 것 · 해낸 것은 눌러 표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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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12 / 16

직원 네 명인데 조직도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세 번째 기둥, 자리의 설계다. 먼저 밝혀둘 것이 있다. 직원을 뽑고 가르치고 면담하고 평가하는 실무는 지난 무료 라이브 「왜 우리 직원은 따라오지 않을까」에서 통째로 다뤘다. 이 장은 그 실무들의 아래층, 그 모든 것이 올라설 바닥 하나만 다룬다. 자리라는 바닥이다. 그 책의 일곱 기둥 중 하나라 건너뛸 수가 없다.

그 책에서 가장 반직관적인 처방

저자의 조직 전략 장에는 작은 사업 오너들이 가장 황당해하는 처방이 나온다. 지금 직원이 몇 명이든 완성된 회사의 조직도를 먼저 그려라. 혼자 시작하는 사업이라도 그리라고 한다. 완성된 조직의 자리들을 전부 그리고, 지금은 같은 이름이 여러 번 들어가더라도 자리마다 책임을 정의하라는 것이다. 네 명인데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저자는 정반대로 답한다. 네 명이라서 그려야 한다.

조직도 없는 네 명의 병원이 열 명이 되는 과정을 보면 이유가 보인다. 네 명일 때는 서로 다 보이니 굴러간다. 일이 늘어 한 명을 뽑으면 제일 바쁜 곳에 넣고, 또 뽑으면 또 급한 곳에 넣는다. 그렇게 열 명이 되면 그 조직은 설계된 적 없이 누적된 조직이 된다. 어떤 일은 두 명이 하고 어떤 일은 아무도 안 한다. 그때 정리하려면 이미 얽힌 것을 풀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뺏겼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생긴다. 네 명일 때 그리는 조직도는 삼십 분짜리 스케치이고, 열 명일 때 그리는 조직도는 몇 달짜리 수술이다.

서열표가 아니라 일의 지도

조직도라고 하면 위에 사장이 있고 아래로 내려가는 피라미드가 떠오른다. 그게 아니다. 저자가 그리라는 것은 사람의 서열이 아니라 일의 지도다. 이 병원이 완성되려면 어떤 기능들이 있어야 하는가. 진료, 상담, 데스크와 예약, 수납과 정산, 자재, 감염관리, 신입 교육, 마케팅, 재무. 기능을 전부 칸으로 그리고 각 칸에 지금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는다. 그러면 종이 한 장에서 세 가지가 드러난다.

드러나는 것 뜻
이름이 없는 칸 아무도 안 하는 일. 문제가 터져야 발견되던 구멍이 미리 보인다
이름이 몰린 사람 서로 무관한 일 대여섯 개가 한 사람에게. 대체로 실장과 원장이다. 그 사람이 아프거나 떠나는 날 무너질 자리들이다
원장 이름이 적힌 칸 원장이 아니어도 되는 일이 원장에게 몰린 지도. 진료와 큰 판단을 뺀 나머지가 앞으로 넘길 목록이다

마지막 칸들을 넘길 순서를 정하면 그것이 원장님의 향후 일이 년 위임 계획이 된다.

한 명 병원에도 이 지도가 필요한가

직원이 한두 명이거나 이제 개원을 준비하는 경우에도 저자는 오히려 가장 단호하다. 혼자여도 그리라고 한다. 혼자인 사업의 조직도에는 모든 칸에 내 이름이 들어간다. 그 순간 알게 된다. 나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열 개의 자리를 오가는 사람이었구나. 아침에는 원장이었고 점심에는 자재 담당이었고 저녁에는 경리였구나.

이 인식이 두 가지를 바꾼다. 하나는 시간이다. 뒤죽박죽 하루가 아니라 지금이 어느 자리의 시간인지 알고 사는 하루가 된다. 다른 하나는 채용이다. 첫 직원을 막연한 일손이 아니라, 내가 든 칸 중 어느 칸을 넘길지가 분명한 채용으로 뽑게 된다. 개원을 준비하는 원장님께는 예방접종이다. 자리를 그려놓고 시작하는 병원은 3장과 4장에서 본 유아기와 사춘기의 고통을 절반쯤 건너뛴다.

네 명이라는 숫자로 돌아가 보자. 네 명 병원에서 한 명이 나가면 전력의 사분의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걸치고 있던 칸 대여섯 개가 한꺼번에 무너진다. 큰 조직은 규모가 완충이 되어주지만 작은 조직의 완충은 구조뿐이다. 조직도는 큰 병원의 사치품이 아니라 작은 병원의 생존 장비다.

겸직은 괜찮고, 미분화가 위험하다

이 기둥의 핵심 구분이다. 한 사람이 여러 자리를 맡는 겸직은 아무 문제가 없다. 네 명 병원에서는 당연하다. 위험한 것은 미분화다. 자리 자체가 나뉘지 않아 "그냥 실장이 하는 일"이라는 덩어리로 뭉쳐 있는 상태다. 차이는 사람이 바뀌는 날 드러난다. 겸직이면 상담은 이 사람에게, 자재는 저 사람에게 자리별로 떼어 넘길 수 있다. 미분화면 덩어리째 넘겨야 하는데 그걸 통째로 받을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자리가 서면 각 자리에 세 줄이 붙는다. 이 자리가 책임지는 결과는 무엇인가. 어디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 잘되고 있는지 무엇으로 확인하는가. 4장에서 배운 위임의 세 줄이 바로 이 자리 위에 앉는다. 사람에게 위임하면 사람이 떠날 때 위임도 떠나고, 자리에 위임하면 사람이 바뀌어도 위임이 남는다.

자리가 있는 병원의 대화

재료가 떨어졌다. 자리가 없는 병원에서 원장님이 묻는다. "이거 왜 주문 안 했어요." 직원들은 "저는 제 일 했는데요", "저는 못 들었는데요"라고 답한다. 얄밉게 들리지만 정확한 답이다. 재고가 누구의 책임인지 정의된 적이 없으니 모두의 일이었고, 모두의 일은 아무의 일도 아니었다. 범인은 못 찾고, 원장님은 화나고, 직원은 억울하고, 다음 달에 또 터진다.

자리가 있는 병원에서는 재고 담당이 말한다. "제 확인이 늦었습니다. 발주 시점을 앞당기겠습니다." 방어가 아니라 개선이 나온다. 영역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자기 영역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 덜 위협적이다. 영역이 없으면 하나를 인정하는 순간 책임이 어디까지 번질지 몰라 일단 막는다. 경계가 분명해야 인정이 싸지고, 인정이 싸야 개선이 빠르다. 병원의 잦은 네 탓 공방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지도 없는 땅의 경계 분쟁이었다.

지도를 그리면 배치의 어긋남도 보인다. 꼼꼼함이 생명인 자리에 덜렁대는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자리에 낯가리는 사람이 앉아 있다. 자리가 아니라 들어온 순서와 그때의 빈손을 보고 배치했기 때문이다. 지도가 없을 때는 그 직원이 일을 못한다로 보이던 것이, 지도가 생기면 배치의 문제로 보인다. 자리를 옮기고 완전히 달라지는 직원이 실제로 많다.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배치를 점검한다.

채용, 승진, 회의가 바뀐다

지금까지의 채용은 바빠지면 뽑아서 급한 데 넣는 일손의 채용이었다. 완성 조직도가 있으면 비어 있는 칸이나 겸직을 풀어야 할 칸이 보이고, 그 칸을 채우는 채용을 한다. 공고에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 "이 결과를 책임질 자리"라고 쓰게 된다. 일손으로 들어온 사람은 삼 년이 지나도 일손이고, 자리로 들어온 사람은 첫날부터 담당자다.

승진과 평가도 같다. 자리 없는 병원의 승진은 연차라서, 호칭과 수당만 바뀌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평가 기준도 성실하다, 태도가 좋다 같은 인상뿐이라 연봉 협상 때마다 서로 힘들다. 자리가 서면 승진은 더 무거운 자리를 맡는 것이 되고, 평가는 자리의 결과 기준과 실제를 비교하는 일이 된다. 성장 경로가 보이는 직장, 그것을 보여주는 데 필요한 것은 복잡한 인사 제도가 아니라 이 종이 한 장이다.

회의도 저절로 바뀐다. 지금 회의에서 다들 원장님만 보는 이유는 안건마다 주인이 없어서다. 모두의 이야기는 결국 원장님 이야기가 된다. 자리가 생기면 재고 안건은 재고 담당이 상황을 말하고 개선안을 낸다. 원장님은 듣고, 묻고, 정할 것만 정한다. 회의는 구조의 거울이다.

이 지도가 가장 절실한 때는 역설적으로 병원이 잘될 때다. 성장기에는 급한 대로 뽑고 급한 대로 나눈 배치가 굳어 아무도 설계하지 않은 구조가 된다. 지도가 있으면 일이 늘 때 어느 칸이 넘치는지 보이고, 성장이 혼란이 아니라 칸 채우기가 된다. 확장을 앞둔 원장님이라면 이 과제를 최상단에 올리기 바란다.

원장의 칸과 실장의 별표

조직도를 그릴 때 원장은 보통 지도 밖, 맨 위에 당연히 있는 존재로 남는다. 원장 자리도 칸으로 그리고 세 줄을 붙여보자. 정의에는 진료의 질, 병원의 방향, 최종 인사 정도가 적히는데 실제 하루에는 그 밖의 일이 훨씬 많다. 그 차이가 원장님이 남의 자리에 들어가 있는 부분이다. 이 칸이 직원들에게 보이면 무엇을 원장에게 가져가고 무엇을 가져가지 않을지도 분명해진다. 원장이 원장의 일만 하는 병원이 여기서 시작된다. 이름을 적을 때는 제대로 맡은 자리와 임시로 걸쳐 있는 자리를 구분해 표시한다. 걸침을 하나씩 세 줄 붙은 맡음으로 바꾸는 것이 다음 몇 달의 조용한 과제다.

별표가 가장 많이 붙을 사람은 아마 실장님이다. 상담, 직원 관리, 수납, 자재, 컴플레인, 원장님과의 통역까지. 이 뭉침은 욕심의 결과가 아니라 일이 생길 때마다 가장 잘하는 사람이 받아온 결과다. 그러니 푸는 대화는 뺏는 대화가 아니라 덜어주는 대화여야 한다. "실장님 요즘 너무 많은 걸 지고 있는 것 같아서, 정리를 같이 해보고 싶어요." 푸는 순서는 절차가 명확하고 실패해도 복구되는 것부터다.

  1. 자재와 거래처
  2. 근태와 스케줄
  3. 수납 (확인 장치를 붙여서)
  4. 상담 (가장 무겁다. 뼈대를 적고 두 번째 상담자를 키우는 긴 작업이 필요하다)

별표가 풀린 실장은 잡무 대여섯 개를 든 사람에서 남은 자리들의 결과를 책임지는 관리자로 올라간다. 덜어주는 것이 키워주는 것이다.

반년마다 갱신하고, 개선의 칸을 넣는다

이 지도는 그리는 순간부터 낡는다. 반년에 한 번 삼십 분이면 된다. 바뀐 이름을 고치고, 세모가 실제로 넘어갔는지 확인하고, 새로 생긴 일의 칸을 더한다. 갱신할 때마다 원장님 이름이 몇 칸에서 몇 칸으로 줄었는지 비교한다. 그 숫자가 줄고 있으면 병원이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시점은 연봉 협상 전이 좋다. 자리와 결과가 정리된 상태에서 들어가면 협상이 감정전이 아니라 근거 있는 대화가 된다.

앞 장의 완성 다섯 줄 중 넷째 줄이 사람이었다. 완성 조직도는 그 줄의 상세 설계도다. 지금 조직도와의 격차가 앞으로의 채용·위임·교육 계획이다. 막연히 사람을 더 뽑아야 하나가 아니라 완성까지 세 칸이 남았고 올해 한 칸을 채운다는 계획. 인건비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계산되는 것이 된다. 지난 라이브의 채용·교육·면담·평가가 사람의 층이라면 이 장은 그 아래 판의 층이다. 자리가 없으면 그 기술들은 전부 반감된다. 판이 먼저다.

거의 모든 병원이 빠뜨리는 칸이 하나 있다. 병원을 더 낫게 만드는 일, 절차를 고치고 바퀴를 돌리는 일은 누구의 자리인가. 어느 조직도에도 이 칸이 없어서 아무도 안 한다. 여기에 원장님의 그 반나절을 넣는다. 병원 개선 담당, 주당 반나절, 담당자 원장. 칸으로 그려 넣으면 짬 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병원의 공식 기능이 된다. 언젠가 실장이 절차 개선을 맡는 날이 오면 병원은 원장님이 혼자 밀지 않아도 좋아진다. 지도를 직원들과 같이 보다 보면 "저 일 제가 해보고 싶은데요" 하는 직원도 나온다. 위임할 곳을 찾던 원장님께 이보다 좋은 신호는 없다.

원장이 달라지는 지점

지금까지 원장님은 병원을 사람들의 집합으로 봤다. 그래서 문제도 해법도 사람이었다. 이제 한 겹이 더해진다. 사람들 아래에 자리의 지도가 깔려 있고, 많은 문제가 사람이 아니라 지도의 문제라는 눈이다. 질문이 바뀐다. 누가 문제인가에서 어느 자리가 비었나로, 누구를 뽑을까에서 어느 칸을 채울까로, 누구를 믿을까에서 어느 자리에 세 줄이 없나로. 사람의 눈은 감정 노동으로 데려가고 자리의 눈은 설계 작업으로 데려간다. 감정은 소모되고 설계는 축적된다.

도구 고민은 하지 않는다. 종이 한 장과 펜이면 된다. 왼쪽 열에 기능, 옆에 이름, 옆에 표시. 완성본을 만들려 하지 말고 초안으로 시작한다. 빠진 걸 직원들이 채워주는 과정이 이 문서를 우리의 지도로 만든다.

세 줄로 접는다. 일을 사람에게서 떼어 자리로 만들 것. 작을수록 먼저 그릴 것. 원장님 이름이 줄어드는 것을 병원의 성장으로 잴 것. 그런데 자리가 있어도 풀리지 않는 오래된 소원이 하나 있다. 좋은 실장만 오면 될 것 같은데, 안 온다. 다음 장에서 그 책의 어느 호텔 이야기와 함께 이 소원을 해부한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조직도는 큰 병원 것이다. 사람을 뽑아서 일을 나눠주면 된다
↓
가질 생각자리를 먼저 설계하고 사람을 앉힌다. 작을수록 먼저 그린다
이번 주에 할 것 · 해낸 것은 눌러 표시하세요
13
QUESTION 13 / 16

좋은 실장만 오면 될 것 같은데, 안 옵니다

일곱 기둥 중 네 번째, 경영을 누가 하느냐의 기둥이다. 사연은 이랬다. 주변에 병원 잘되는 원장들을 보면 다들 실장을 잘 만났다. 나도 몇 년째 그런 실장을 찾는데 안 온다. 왔다 싶으면 몇 년 있다 나가고, 지금은 구인 공고를 내도 지원 자체가 없다. 결국 사람 복인가.

이 장이 겨누는 표적은 마지막의 두 글자, 사람 복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가 정확히 이 표적을 쏜다. 어느 작은 호텔 이야기다.

직원이 다 바뀌었는데 감동이 같았던 호텔

저자가 출장길에 우연히 작은 호텔에 묵었다. 체크인을 하는데 직원이 이름을 부르며 맞이한다. 방에는 벽난로에 불이 준비되어 있고, 침대 옆에는 그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것들이 놓여 있다. 아침에는 전날 무심코 말한 취향 그대로의 커피와 신문이 문 앞에 와 있다. 몇 달 뒤 다시 찾은 그 호텔은 직원이 전부 달랐는데, 모든 것이 정확히 같았다.

저자가 매니저에게 물었다. 직원이 바뀌었는데 어떻게 서비스가 똑같은가. 매니저가 보여준 답은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도, 천재적인 직원도 아니었다. 손님의 취향을 적는 절차, 그 기록이 다음 방문에 반영되는 구조, 접점마다의 확인 목록이었다. 그 감동은 사람의 재능이 아니라 시스템의 산출물이었고, 그 위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이 경험을 경영 전략 장의 심장에 놓고 이렇게 정리한다. 뛰어난 관리자를 기다리지 말고, 경영 시스템이 경영하게 하라.

이 이야기에서 주울 것이 두 개 더 있다. 하나는 감동의 정체다. 이름을 불러준 것, 취향이 준비된 것, 말한 것이 기억된 것. 전부 사람 냄새라고 부르는 따뜻한 것들인데, 그 따뜻함의 공급자가 시스템이었다. 시스템과 따뜻함은 반대말이 아니라, 시스템이 따뜻함의 배달망이었던 것이다. 병원도 같다. 지난 치료를 기억해주는 것, 전화했을 때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은 기록과 절차가 배달한다. 직원 개인의 기억력에만 실린 따뜻함은 바쁜 날 끊기고 사람이 바뀌면 사라진다.

다른 하나는 그 호텔이 대형 체인이 아니라 작은 호텔이었다는 사실이다. 시스템은 규모의 산물이 아니다. 취향을 적는 카드 한 장, 접점마다의 확인 목록, 기록이 다음 방문으로 흐르는 절차. 자본이 아니라 설계였다. 다섯 명 병원이 내일부터 못 할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작은 조직의 시스템은 가볍고 고치기 쉽고 전파가 빠르다. 우리는 시스템이라는 말에서 대형 병원의 전산과 매뉴얼 더미를 떠올리며 미리 포기하지만, 원형은 그 카드 한 장이다.

사람 복은 나쁜 복권이다

좋은 실장만 오면 된다는 기대는 복권이다. 그것도 나쁜 복권이다. 이유는 세 가지다.

  1. 확률이 낮다. 상담 잘하고, 직원 관리 되고, 숫자 보고, 알아서 움직이는 사람은 시장에 거의 없다. 있다면 이미 어딘가에서 대접받고 있거나 자기 사업을 준비 중이다.
  2. 당첨돼도 한시적이다. 그런 사람이 기적처럼 오면 문서도 구조도 없이 병원의 경영이 통째로 얹힌다. 그 사이 원장은 경영 근육을 더 잃는다. 그 사람이 떠나는 날, 병원은 그가 오기 전보다 더 깊이 무너진다.
  3. 복권을 사는 동안 공사가 멈춘다. 이게 제일 큰 비용이다. 기준도 문서도 시스템도 그 사람이 올 때까지로 미뤄진다. 복권을 쥔 사람은 저축을 하지 않는다.

그 호텔은 좋은 매니저를 기다리지 않았다. 좋은 매니저가 없어도 되는 구조를 지었다. 역설적으로, 그런 구조를 가진 곳에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

떠난 실장들의 복기

몇 년 있다 나간 실장들을 아프더라도 복기해볼 가치가 있다. 표면의 사유는 결혼, 이사, 육아였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사유로도 남는 사람은 남는다. 떠남을 쉽게 만든 바닥의 조건이 따로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잘한다고 일이 계속 얹힌 과부하, 삼 년째 같은 일이 반복된 정체, 원장과 직원 사이의 통역을 혼자 감당한 소진. 그리고 이 병원에서의 미래를 그려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이 조건들은 전부 사람이 아니라 판의 문제다. 좋은 실장이 안 오는 게 아니라, 왔던 좋은 실장들을 판이 배웅해왔을 수 있다. 같은 판에 새 사람을 넣으면 같은 결말이 반복되고, 판을 고치면 같은 급의 사람이 와도 다른 결말이 난다.

순서가 반대였다

잘되는 병원들의 그 실장 이야기를 다시 보자. 좋은 실장이 와서 병원이 잘된 것인가, 병원의 구조가 좋아서 실장이 좋아진 것인가. 가까이서 보면 대부분 후자다. 그 병원들에는 자리가 정의되어 있고, 권한이 정해져 있고, 숫자가 보이고, 원장이 병원 위에서 일하는 시간이 있다. 그 판 위에서 평범하게 성실한 사람이 몇 년 크면서 좋은 실장이 되어간 것이다. 같은 사람이 판 없는 병원에 갔다면 눈치로 버티다 지쳐 떠났을 것이고, 그 병원 원장은 역시 좋은 실장이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사람 복처럼 보이는 것의 정체는 대부분 판 복이다. 그리고 판은 복이 아니라 공사다.

한 겹 더 들어가면, 경영을 맡길 사람을 뽑으려면 뽑는 사람이 경영을 알아야 한다. 뭘 시킬지, 어디까지 맡길지, 잘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눈은 경영을 직접 몇 달이라도 해본 사람에게만 생긴다. 그 눈 없이 뽑으면 둘 중 하나다. 뭘 시킬지 몰라 방치하거나, 모든 걸 넘겨 실권이 통째로 넘어가거나. 그래서 순서가 있다. 원장 안의 관리자가 먼저 서고, 그다음에 관리를 넘긴다. 몇 년째 좋은 실장을 못 찾은 이유에는 찾는 눈이 아직 준비 전이었다는 것도 있었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과의 협상이라는 덫

모든 것이 얹혀 있는 실장과의 연봉 협상은 협상이 아니라 인질 협상이다. 이 사람이 나가면 병원이 흔들린다는 계산이 머릿속에 있는 한, 요구는 대체로 관철되고 원장 마음에는 앙금이 남는다. 실장이 나빠서가 아니라 구조가 그 자리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판이 갖춰진 병원의 협상은 다르다. 자리마다 결과 기준이 있으니 근거 위에서 이야기하고, 그런 병원이 오히려 더 잘 올려준다. 기여가 숫자로 보이니까. 사람을 귀하게 대하는 것과 사람에게 매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지금 실장님이 계신 병원이라면

좋은 실장이 이미 있는 병원은 더 절실하게 들어야 한다. 그분이 잘하는 방식은 지금 문서에 있는가, 그분 머릿속에 있는가. 머릿속이라면 그 축복에는 만기가 있다. 잘하는 사람에게 다 얹어두면 과부하가 그 만기를 앞당긴다. 그러니 관계가 좋은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그분의 방식을 그분과 함께 문서로 만들고, 몰린 일을 자리로 나누고, 두 번째 사람을 그분이 키우게 하는 것. 대체하려는 준비가 아니라, 실장님이 휴가를 갈 수 있고 더 큰 역할로 올라가게 하는 일이라고 설명하면 된다. 사실이기도 하다.

몇 년 뒤의 유혹도 미리 적어둔다. 실장이 크고 나면, 이제 실장이 다 알아서 한다며 병원을 통째로 기대고 싶어진다. 그 순간 병원은 원장 의존에서 실장 의존으로 갈아탄 것뿐이다. 그래서 판의 원칙은 실장에게도 같다. 실장의 방식도 문서로, 실장의 일도 자리로, 실장 아래 두 번째 사람도 미리. 누구도 그 사람이 빠지면 멈추는 단일 지점이 되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시스템 위에서 크고 쉬고 교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기둥의 최종 뜻이다.

시스템이 경영한다는 말의 실제 모양

거창한 게 아니다. 매주 같은 요일, 같은 형식의 십오 분 운영 미팅. 안건은 즉흥이 아니라 정해진 틀이다. 지난주 숫자, 이번 주 특이사항, 걸린 문제 하나. 매달 첫 주에 누가 챙기지 않아도 나오는 한 장짜리 숫자 보고. 문제가 생기면 사람을 혼내기 전에 절차를 보는 순서. 신입이 오면 자동으로 시작되는 교육 경로. 전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렇게 되어 있어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 리듬이 있는 병원은 원장이 지친 달에도, 실장이 바뀐 분기에도 같은 박자로 간다.

그 리듬을 처음 만드는 사람은 원장일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경영하게 하라는 말은 원장이 경영에서 빠지라는 말이 아니라, 원장의 경영을 리듬으로 바꿔 병원에 심으라는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결과

이 기둥의 주춧돌이 되는 저자의 원칙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결과를 내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라. 비범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사업은 시스템의 실패를 사람으로 때우고 있는 것이다. 직원을 깎아내리는 말이 아니라, 채용의 저주에서 병원을 해방시키는 말이다. 비범한 사람이 있어야 돌아가는 병원은 채용이 도박이 되고, 평범한 성실함이면 충분한 병원은 확률 게임에서 벗어난다. 성실한 사람은 시장에 늘 있으니까.

진짜 역설은 그다음이다. 평범해도 되는 구조에서 사람들은 비범해진다. 비범함을 요구하는 무구조 병원에서는 비범한 사람도 평범해진다. 에너지가 전부 생존과 눈치에 쓰이니까. 시스템은 사람을 키우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판의 최소 구성품 다섯 가지

좋은 사람이 크고 머무는 판의 최소 구성품은 이렇다.

  1. 정의된 자리. 내가 무엇을 책임지는지 아는 것. 12장의 조직도와 세 줄이다.
  2. 실제 권한. 내 영역의 결정을 내가 하는 것. 결정권 없는 책임은 사람을 갉아먹는다.
  3. 보이는 정보. 병원이 어디로 가는지, 내 일의 결과가 어떤지 숫자로 보이는 것.
  4. 안전한 실패. 시도가 안 되어도 처벌이 아니라 학습으로 처리되는 것.
  5. 보이는 다음. 여기서 삼 년을 다니면 내가 뭐가 되어 있을지의 그림.

다섯 중 돈이 드는 항목은 하나도 없다. 좋은 판은 부자 병원의 특권이 아니라 생각한 병원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 다섯은 채용 공고에 그대로 옮겨 써도 된다. 면접에서 그 증거를 보여줄 수 있는 병원이 되는 것, 그게 구인난 시대의 진짜 채용 경쟁력이다. 사람이 귀한 시대에는 있는 사람을 잃지 않는 것, 있는 사람으로 더 많이 되게 하는 것이 생존 조건이다. 판이 좋은 병원은 사람이 덜 나가고, 시스템이 받쳐주는 병원은 같은 인원으로 더 돌아간다. 귀한 인재일수록 직장을 고르고, 월급 다음에 보는 것이 이 체계다. 사람이 안 구해지는 시대일수록 답은 사람 바깥에 있다.

판이 바뀐 병원의 일 년

그림 하나를 그려보자. 어느 원장이 좋은 실장 찾기를 포기하는 데서 시작한다. 대신 반나절의 시간을 만들고, 조직도를 그리고, 시키지 않은 정리를 하던 사 년 차 직원에게 재고와 거래처라는 자리 하나를 세 줄과 함께 넘긴다. 석 달 뒤 그 직원은 발주 시점을 스스로 당기고 업체와 단가 이야기를 한다. 두 번째 자리로 신입 교육을 넘기자, 그가 만든 교육 문서가 병원의 첫 매뉴얼이 된다. 일 년 뒤 그의 명함에는 실장이라는 직함이 박힌다. 몇 년째 안 오던 그 좋은 실장은 처음부터 병원 안에 있었다. 판이 없어서 안 보였을 뿐이다.

원장이 달라지는 지점

지금까지 원장님은 병원의 미래를 채용 사이트에 걸어두었다. 겸손해 보이지만 가장 수동적인 경영이다. 이제 그 운명이 원장님 손으로 돌아온다. 사람을 기다리는 원장에서 판을 짓는 원장으로. 판을 짓는 원장의 공고는 알아서 잘하실 분이 아니라, 이런 자리에서 이런 권한으로 이렇게 성장할 분을 찾는다고 쓴다. 복을 기다리는 사람에서 복이 내릴 자리를 만드는 사람으로. 농부가 밭을 갈아두고 비를 기다리는 것과 밭 없이 비만 기다리는 것의 차이다. 공고와 면접과 실망을 반복하던 그 에너지의 절반만 판 짓기로 돌렸어도 판은 벌써 절반이 서 있었을 것이다. 찾기에서 짓기로, 방향을 바꾸자.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좋은 사람이 와야 병원이 풀린다. 사람 복을 기다린다.
↓
가질 생각평범한 사람이 비범해지는 판을 짓는다. 사람을 기다리지 말고 구조를 지으면, 사람이 온다. 이미 와 있던 사람들 안에서도.
이번 주에 할 것 · 해낸 것은 눌러 표시하세요

판을 지으면 평범한 사람이 비범해진다. 그런데 판에는 구조 말고 하나가 더 필요하다. 사람이 그 판에서 뛰고 싶어지는 이유다. 다음 장에서는 가장 많은 원장님이 공감할 한숨, 요즘 직원들은 주인의식이 없다는 문장을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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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14 / 16

요즘 직원들은 주인의식이 없습니다

일곱 기둥 중 다섯 번째,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기둥이다. 이 사연은 질문이라기보다 한숨이었다. 요즘 직원들은 주인의식이 없다. 시키는 것만 하고, 정시에 퇴근하고, 병원이 잘되든 말든 관심이 없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공감하는 원장님이 많을 것이다. 이 장에서는 이 문장을 뒤집는다. 그 책의 인력 전략 장이 이 뒤집기의 원조다. 저자는 수만 명의 오너에게서 똑같은 한숨을 들었고, 그 한숨에 내놓은 답이 있다.

주인의식이 없는 게 아니라 정확한 것이다

차가운 산수부터 하자. 주인은 왜 주인처럼 행동하는가. 주인이니까. 병원이 잘되면 결실이 주인에게 오고, 망하면 손실이 주인에게 간다. 주인의 몰입은 인격이 아니라 구조다. 직원의 구조는 어떤가. 병원이 잘되면 대체로 월급은 그대로인 채 더 많은 일이 온다. 병원이 어려우면 불안과 눈치가 온다. 이 구조에서 시키는 것만 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것은 의식의 결핍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정확한 반응이다.

주인의식이 없다는 한탄은 결국,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의 구조 없이 주인의 마음만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건 바람이지 경영이 아니다. 그렇다고 돈으로 사면 된다는 결론으로 가면 그것도 틀린다. 저자도 그걸 알았다. 돈은 불만을 줄일 뿐 몰입을 만들지는 못한다. 몰입은 다른 데서 온다.

사람은 게임이 있는 곳에서 뛴다

인력 전략 장에서 가장 빛나는 통찰이 이것이다. 사람들은 일을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의미 없는 일을 하기 싫은 것이고, 일에 의미를 주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이 속한 게임이다.

사람은 왜 게임에 빠지는가. 규칙이 명확하고, 점수가 보이고, 이기는 방법이 있고, 잘하면 인정이 온다. 이 조건이 갖춰지면 시키지 않아도, 주말에 돈을 내면서까지 몰입한다. 이제 직원의 하루를 게임의 눈으로 보자. 규칙은 없거나 원장 기분에 따라 바뀐다. 내 일이 잘되고 있는지 알 점수가 없다. 잘해도 끝없는 '더'가 있을 뿐 이길 수가 없다. 잘하면 조용하고 못하면 소리가 난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노역이다. 세상에서 제일 성실한 사람도 이 판에서는 시든다.

그래서 저자의 처방은 이렇다. 직원을 바꾸려 하지 말고 직원이 뛰고 싶은 게임을 설계하라. 그리고 그 게임의 첫 번째 플레이어이자 규칙의 수호자가 오너 자신이 되라.

게임의 첫 번째 규칙은 보스가 지킨다

병원의 게임이 무너지는 가장 흔한 경로는 규칙을 만든 원장이 규칙을 건너뛰는 것이다. 기록하자고 해놓고 원장은 기록하지 않고, 회의 시간을 정해놓고 원장이 늦고, 기준을 세워놓고 원장이 기분 따라 예외를 만든다. 직원들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해석한다. 저 규칙은 장식이고, 이 병원의 진짜 규칙은 원장의 마음이구나. 그 순간 게임은 원장 기분을 읽는 게임, 눈치라는 게임으로 바뀐다. 그 게임에는 몰입이 아니라 피로만 있다. 주인의식을 바라기 전에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나는 이 게임의 첫 번째 모범 플레이어인가.

주인의식이라는 말을 내려놓으면

단어 하나를 바꾸자고 제안한다. 주인의 몫은 없는데 주인의 마음만 내라는 요구를 받으면 사람은 기만을 느낀다. 요즘 직원들이 이 단어에 냉소하는 것은 그 기만을 정확히 감지해서다. 대신 쓸 말은 자기 자리의 주인이다. 병원 전체가 아니라 리콜이라는 자리, 재고라는 자리의 주인. 그 자리의 결정권과 결과와 인정은 실제로 그 사람 것이 되게 해줄 수 있으니 기만이 아니다. 병원 전체의 주인의식은 원장의 몫이고, 직원에게는 각자 자리의 주인 됨을 준다. 그 주인들이 모이면 책임의 분산 소유라는, 바라던 것보다 단단한 것이 생긴다.

병원이라는 게임의 재설계

병원을 뛰고 싶은 게임으로 만드는 부품은 앞 장들에서 이미 다 나왔다. 게임의 언어로 재조립만 하면 된다.

게임의 부품 병원에서 왜 필요한가
규칙 기준과 자리의 세 줄 규칙이 명확해야 공정하고, 사람은 공정한 게임에만 진심을 건다
점수판 숫자의 공유(신환, 예약 이행률, 리콜 응답) 점수 없는 경기에 전력을 다하는 선수는 없다
이기는 경험 완주하는 바퀴 이겨본 팀이 다음 판에 더 뛴다
인정 "그 개선, 김선생 아이디어였잖아요" 이 한마디가 게임을 살린다
의미 완성 그림과 방향 점수만 있는 게임은 짧고, 서사가 있는 게임은 오래간다

대부분의 병원은 직원들에게 점수판 없는 경기를 시키고 있다. 점수는 원장 혼자 보면서. 기준은 규칙이고, 계기판은 점수판이고, 바퀴는 시즌이고, 완성 그림은 우승 트로피다. 병원의 구조를 짓는 동안 원장님은 사실 직원들의 게임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정시 퇴근이라는 오해

정시 퇴근을 몰입 없음의 증거로 읽는 등식은 위험하다. 늦게 남는 것과 몰입은 다르다. 원장이 늦게 남는 직원을 좋게 보기 시작하면 게임은 성과가 아니라 체류 시간의 게임으로 변형되고, 그 판에서 제일 먼저 나가는 것은 일 잘하는 사람이다. 몰입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신호로 잰다. 자기 자리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는가, 더 나은 방법을 제안한 적이 있는가, 자기 영역의 숫자에 반응하는가. 좋은 판에서는 이 신호들과 정시 퇴근이 함께 간다. 원장님의 그 늦은 밤들이 몰입이었는지 구조 부재의 청구서였는지 이 책 내내 보았다. 같은 청구서를 직원에게 물려줄 이유가 없다.

왜 일하는가에 답이 있는 병원

게임의 마지막 부품인 의미에 대해 저자는 묻는다. 당신의 직원들은 자기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아는가. 월급 말고, 이 병원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는 곳이고 내 일이 그 안에서 무엇을 맡는지에 대한 답이다. 데스크 직원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전화 받고 접수해요"라는 답과 "처음 온 환자분들이 불안하지 않게 만드는 일을 해요"라는 답. 같은 일인데 완전히 다른 하루를 사는 두 사람이다.

두 번째 답은 원장이 준 것이다. 7장에서 환자는 경험을 산다고 했다. 그 경험의 각 페이지를 누가 쓰는지 직원에게 보여주는 것이 의미의 배급이다. 사람은 밥을 위해 일을 시작하지만 의미를 위해 일에 남는다. 그리고 의미의 유일한 공급자는 원장이다. 위임이 안 되는 원장의 일이다.

우리 때는 안 그랬다는 말에 대해

맞다, 안 그랬다. 그런데 그때의 몰입에는 지금 없는 보상이 걸려 있었다. 버티면 올라가는 사다리, 병원이 크면 나도 큰다는 실감, 이직이 흠이 되던 시대의 관성. 지금 세대는 그 보상이 사라진 판을 물려받았다. 판이 바뀌었는데 옛 판의 몰입을 요구하면 시대를 탓하는 것밖에 안 된다. 희망적인 사실도 있다. 지금 세대는 몰입을 안 하는 세대가 아니라 몰입할 가치가 있는 판을 고르는 세대다. 판만 좋으면, 판을 가장 잘 알아보는 세대와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원장님 자신에게 대보아도 된다. 페이 시절의 그 열심은 그 병원을 위해서였나, 내 실력과 내 미래를 위해서였나. 후자였을 것이고, 그게 정상이다. 그때는 실력이 는다는 명확한 게임이 있었던 것뿐이다. 지금 직원들에게 필요한 것도 도덕이 아니라 그런 게임이다.

시들해진 고참을 되살리는 법

가장 흔하고 어려운 경우가 있다. 들어올 때 반짝이던 직원이 오 년 차가 되며 꺼진 경우다. 게임의 눈으로 보면 삼 년 차쯤 이미 게임이 끝났다. 더 배울 것도 올라갈 곳도 없이, 잘해도 어제와 같은 오늘. 시든 게 아니라 클리어한 게임을 오 년째 다시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처방은 잔소리가 아니라 새 판이다. 새 자리를 맡기거나, 신입을 키우는 역할을 주거나, 새 바퀴 하나를 그 사람의 실험으로 맡긴다. 신입들은 자기 미래를 고참에게서 읽는다. 고참이 다시 뛰면 이 병원의 게임은 오래 다녀도 끝나지 않는다는, 그만큼 강한 공고문이 없다.

게임을 살리는 말, 죽이는 말

판의 수리는 제도 이전에 원장의 문장에서 시작된다.

상황 죽이는 말 살리는 말
제안했을 때 "그건 예전에 해봤는데 안 돼요." "한번 재볼까요? 이 주만 해보고 숫자로 봅시다."
실수가 나왔을 때 "누가 그랬어요?" "어느 절차에 구멍이 있었을까요?"
잘했을 때 침묵 "아까 먼저 기다림 안내한 거, 그게 프로예요."
숫자가 나쁠 때 "이래서 되겠어요?" "이 숫자 같이 볼까요? 뭐가 있었을까요?"

사람을 찾는 병원에서는 실수가 숨고, 구조를 찾는 병원에서는 실수가 올라온다. 제도는 판의 뼈대고 원장의 입은 판의 날씨다. 뼈대가 좋아도 날씨가 나쁘면 아무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

돈 이야기, 그리고 작은 병원의 유리함

돈은 중요하다. 급여는 게임의 입장료다. 시장보다 박한 급여 위에서는 어떤 게임도 서지 않는다. 그러나 입장료를 낸 다음의 몰입은 돈이 못 산다. 숫자에 돈을 걸면 그 숫자만 좇는 왜곡이 생기고, 보상 없는 일은 안 하게 되고, 협력이 경쟁으로 변질된다. 협업이 생명인 병원에서는 특히 조심할 도구다. 순서는 이렇다. 급여는 공정하고 정직하게, 그 위의 몰입은 게임으로. 그리고 정말 잘된 해에는 결실을 나눈다. 결실의 공유는 함께 이겼다는 서사가 되므로 부작용이 없다.

게임 설계는 작을수록 쉽다. 큰 조직은 내 일과 성과의 연결이 멀고 인정이 계층을 타다 증발한다. 다섯 명 병원은 내가 바꾼 전화 멘트가 이번 주 예약 숫자로 바로 보이고, 잘한 일은 원장이 직접 봤다. 재료가 다 있는데 게임을 안 만들고 있었을 뿐이다. 게임이 가벼운 단어처럼 들린다면, 저자가 이 통찰을 얻은 곳이 놀이터가 아니라 사람 문제로 무너진 수많은 사업장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 공통점은 나쁜 직원이 아니라 설계되지 않은 판이었다.

직원 관리 기술과의 자리 정리

채용, 교육, 면담, 평가는 내가 다른 강의에서 따로 다뤄온 게임의 운영 기술이다. 이 장은 그 기술들이 작동할 게임 자체의 설계다. 게임 없는 곳의 면담은 취조가 되기 쉽고 평가는 감정이 되기 쉽다. 게임이 선 곳에서는 면담이 판을 점검하는 대화가 되고, 평가는 점수판을 같이 읽는 시간이 된다. 판이 먼저, 기술이 다음이다.

판이 서면 면접에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 병원은 각자 자기 자리가 있고, 그 자리의 결정은 그 사람이 한다. 매달 숫자를 같이 보고, 바꿔보고 싶으면 재보고 결정한다. 시도가 실패해도 혼나지 않는다. 일 년에 몇 번 우리가 뭘 이뤘는지 같이 확인한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은 심드렁하고, 뛸 판을 찾던 사람은 눈이 켜진다. 원장님이 원하던 사람은 후자다.

게임이 돌기 시작한 병원의 신호들

몇 달 뒤 이런 장면이 보이면 판이 살아난 것이다. 직원이 자기 숫자를 먼저 꺼낸다. "이번 달 리콜 응답이 떨어졌는데 문자 시점을 바꿔볼까요?" 실수 보고가 작을 때 빨리 올라온다. 시키지 않았는데 고참이 신입에게 "우리는 이렇게 해"라고 규칙을 설명한다. 회식 자리의 화제가 불평이 아니라 그 환자, 이번에 바꾼 그것이 된다. 그때쯤이면 주인의식이라는 단어가 더는 필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바라던 것이 이름을 바꿔 이미 와 있으니까.

원장이 달라지는 지점

지금까지 직원이 시들해 보이면 원장님의 시선은 그 사람의 내면으로 갔다. 그 시선의 끝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남의 마음은 원장의 관할이 아니다. 이제 시선이 판으로 옮겨진다. 이 사람이 뛰지 않는 건 판의 어디가 고장 나서인가. 규칙인가, 점수판인가, 이길 가능성인가, 인정인가. 판은 전부 원장의 관할이고 고칠 수 있다. 사람을 탓하는 눈은 무력하고 판을 보는 눈은 유능하다. 그리고 직원을 보는 원장의 표정이 한심함에서 궁금함으로 바뀐다. 직원들이 그 변화를 제일 먼저 알아챈다. 판의 수리는 그 표정에서 이미 시작된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요즘 직원들은 주인의식이 없다. 좋은 마음을 가진 직원을 찾아야 한다.
↓
가질 생각직원을 관리하지 말고, 직원이 뛰고 싶은 게임을 설계한다. 몰입은 인격이 아니라 판의 산물이다.
이번 주에 할 것 · 해낸 것은 눌러 표시하세요

사람의 기둥까지 세웠다. 다음 장은 환자 쪽 기둥, 광고비만 나가고 신환은 그대로라는 한숨이다. 그 책이 말하는 마케팅의 뿌리 하나, 환자는 어디서 결정하는가를 본다.

15
QUESTION 15 / 16

광고비만 나가고 신환은 그대로입니다

일곱 기둥 중 여섯 번째, 환자의 기둥이다. 사연은 이랬다. 매달 광고비가 적잖게 나간다. 플레이스, 블로그, 이것저것 다 한다. 그런데 신환은 몇 년째 그대로다. 끊자니 무섭고 계속하자니 밑 빠진 독 같다.

채널별 전략과 콘텐츠와 광고 운영 같은 마케팅의 실전은 다른 강의에서 따로 다뤄왔다. 이 장은 그 실전들의 뿌리에 있는 질문 하나만 다룬다. 그 책의 마케팅 전략 장이 파고드는 단 하나의 질문, 환자는 어디서 결정하는가. 이 뿌리가 없으면 어떤 채널 전략도 밑 빠진 독이 되고, 이 뿌리가 서면 같은 광고비가 다르게 일한다. 사십 년 전의 책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채널은 계속 바뀌어도 사람의 결정 구조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고객은 이성으로 사지 않는다

저자는 마케팅 장을 이 선언으로 연다. 고객의 구매 결정은 이성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일어난다. 고객은 사양을 비교해서 사는 게 아니라, 자기도 설명 못 하는 느낌으로 결정하고 나서 이유를 나중에 붙인다.

병원에서는 이 명제가 더 강해진다. 7장에서 본 것처럼 환자는 진료의 품질을 평가할 능력이 없고,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일수록 결정은 더욱 느낌으로 이뤄진다. 병원 선택의 맥락에서 그 느낌의 정체는 하나로 모인다. 불안이다. 환자는 아프고, 모르는 것투성이고, 바가지와 통증과 잘못될까 봐 무서운 사람이다. 환자의 무의식은 모든 접점에서 하나를 묻는다. 여기는 안전한가. 그 질문에 안심을 주는 병원으로 환자는 가고, 불안을 건드리는 병원에서는 자기도 왜인지 모른 채 조용히 떠난다.

광고비가 헛도는 구조

광고가 하는 일은 환자를 데려오는 게 아니라 환자의 시선을 데려오는 것까지다. 광고를 본 환자는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 여정을 거친다. 이름을 검색하고, 후기를 읽고, 지도의 별점을 보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 그러고도 절반쯤 남은 불안을 안고 전화를 건다. 그 여정의 각 지점에서 무의식은 안전한가를 채점한다. 광고는 근사한데 후기가 갸웃하면 탈락, 후기는 괜찮은데 전화가 사무적이면 탈락. 환자는 항의하지 않고 그냥 다음 병원을 누른다.

그러니 광고비만 나가고 신환이 그대로라면 대체로 광고가 문제가 아니다. 광고가 데려온 시선이 확인 여정 어딘가에서 새고 있다. 독에 물을 더 붓기 전에 새는 구멍을 찾아야 하고, 그 구멍은 언제나 불안이 건드려지는 지점이다. 이 기둥의 핵심 문장은 이것이다. 환자를 모으려 하지 말고, 환자의 불안이 줄어드는 경험을 설계하라. 모임은 그 결과로 따라온다.

신환의 수보다 먼저 볼 숫자

신환 수는 마케팅 성적표의 마지막 줄이다. 어디가 문제인지는 그 앞 줄들을 펼쳐야 보인다.

사슬의 단계 여기서 막히면
광고가 데려온 시선 → 전화·예약 시도 확인 여정의 문제
문의 → 실제 예약 전화 응대의 문제
예약 → 실제 내원 예약과 내원 사이 관리의 문제
내원 → 치료, 재방문, 소개 경험의 문제

범인이 다른데 처방이 전부 광고 증액이었던 것, 그게 밑 빠진 독의 정체다. 이 사슬의 숫자 몇 개를 계기판에 올리는 것이 마케팅 정상화의 시작이다. 대부분 접수 프로그램과 전화 옆에 바를 정(正) 자를 쓰는 것으로 잡힌다.

원장이 보는 병원, 환자가 보는 병원

이 기둥이 어려운 이유는 원장과 환자가 같은 병원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원장이 보는 강점은 진료의 정확성, 좋은 재료, 성실한 술식이다. 그래서 알리고 싶은 것도 장비의 사양, 술식의 이름, 원장의 이력이다. 환자는 그 내용을 평가할 눈이 없으니 자기가 볼 수 있는 것을 본다. 전화의 목소리, 후기의 온도, 설명의 속도, 기다림의 시간, 그리고 자기 불안이 다뤄지는 방식.

병원은 내용을 방송하는데 환자는 느낌을 수신한다. 주파수가 다르다. 답은 내용을 버리는 게 아니라 번역이다. 좋은 재료를 쓴다는 말 대신 왜 이 재료를 쓰는지 환자의 걱정에 연결해 설명하고, 이력 대신 그 이력이 환자에게 무엇을 보장하는지 보여준다. 번역된 내용만 환자에게 도착한다.

불안을 다루는 것과 불안을 파는 것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불안을 다루는 것과 불안을 이용하는 것은 정반대의 일이다. 공포를 키워 결정을 재촉하고, 지금 안 하면 큰일 난다고 말하는 상담은 단기적으로 동의율을 올린다. 겁먹은 사람은 사인을 하니까. 하지만 공포로 받은 동의에는 반드시 청구서가 온다. 집에 가서 검색해보고 식은 마음의 취소로, 치료 후의 찜찜함으로, 저 병원 겁주더라는 말로. 불안을 다룬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감당할 수 있는 순서로 선택권과 함께 주는 것이다. 덜 무섭게 만들어서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 이 선은 윤리의 선이면서 전략의 선이다. 공포 마케팅은 한 명의 오늘을 얻고 평판이라는 내일을 내준다.

최고, 최신, 무통, 반값 같은 센 문구도 같은 렌즈로 보면 비싸다. 첫째, 기대를 부풀려 평범하게 좋은 경험에도 실망하게 만들고, 그 실망은 후기가 되어 확인 여정의 구멍이 된다. 둘째, 불안한 사람은 과장에 더 예민해서 너무 좋은 말을 무언가 숨기는 신호로 읽는다. 셋째, 그 문구에 반응해 오는 환자층은 조건에 가장 민감해서 더 센 문구가 나오면 그리로 간다. 담백한 광고는 소심한 게 아니라 계산된 것이다.

의료 광고에 법과 심의의 선이 있다는 것도 이 렌즈로 보면 우리 편이다. 법이 금지하는 것과 환자의 무의식이 싫어하는 것이 상당 부분 겹친다. 선 안에서 담백하게, 대신 확인 여정과 경험 설계로 승부하는 것은 차선이 아니라 원래의 정석이다.

불안의 지도

설계의 방법은 불안의 지도다. 환자의 여정을 따라 각 지점에서 솟는 불안을 적고, 그 자리마다 안심의 장치를 심는다.

지점 솟는 불안 안심의 장치
검색 여기 믿을 만한 곳인가 일관된 정보, 진짜 환자들의 목소리
전화 무시당하지 않을까, 뭘 물어봐야 하지 먼저 물어봐주는 응대. "어디가 불편해서 전화 주셨어요?"
첫 내원 낯섦 그 자체 예상 가능성. 오늘 뭘 하고 얼마나 걸리는지 먼저 알려주기
진단·상담 얼마 나올까, 과잉 아닐까, 아플까 상태를 먼저, 선택지를 전부, 비용은 이해가 선 다음에
치료 후 이게 정상인가, 연락해도 되나 먼저 오는 연락. 다음 날 전화나 문자 하나

상담 지점은 불안의 최고점이다. 여기서 "안 해도 되는 것은 안 해도 된다"는 한 문장이 주는 안심은 어떤 광고로도 못 산다. 환자가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묻는 순간의 진짜 뜻은, 나를 파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으로 봐달라는 것이다. 그때 정직한 답을 주는 병원이 그 환자의 평생 병원이 된다. 보이는가. 전부 돈이 아니라 설계다. 그리고 이 지도는 7장에서 그려본 경험의 지도와 같다. 마케팅과 경험은 다른 부서가 아니라 같은 것의 안팎이다. 그 책이 마케팅 장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이것이다.

광고를 끊어야 하나

당장 끊지 말고 순서를 바꾸자. 이번 분기는 광고를 유지한 채 두 가지를 한다. 사슬의 숫자를 재기 시작하는 것, 확인 여정의 구멍 하나를 고치는 것. 그러면 다음 분기부터 데이터가 말을 한다. 어느 채널의 시선이 실제 환자가 되는지, 구멍을 고친 뒤 같은 광고비의 산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위에서 조정하면 끊는 것도 늘리는 것도 도박이 아니라 판단이 된다. 광고는 악이 아니다. 측정 없는 광고, 구멍 난 여정 위의 광고가 낭비일 뿐이다.

우리 병원은 누구의 불안에 강한가

모든 환자의 모든 불안에 다 잘할 수는 없다. 통증이 제일 무서운 사람, 비용의 불투명이 제일 싫은 사람, 과잉 진료가 걱정인 사람, 아이 때문에 온 보호자, 나이 든 부모를 모시고 온 자녀. 불안에는 결이 있다. 우리 병원에 유독 고마워하는 환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을 떠올려보자. 설명이 편했다는 말이 많으면 불투명의 불안에 강한 병원이고, 안 아팠다는 말이 많으면 통증의 불안에 강한 병원이다. 그 강점이 진짜 포지션이다. 잘 다루는 불안을 더 잘 다루고 더 잘 보이게 하는 것, 작은 병원의 마케팅 전략은 이 한 줄이면 된다.

저자의 마케팅 장에는 무의식과 나란히 데이터라는 기둥이 있다. 우리 환자가 누구인지 감으로 알지 말고 숫자로 알라는 것이다. 필요한 시스템은 접수의 질문 하나, "저희 병원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를 빠짐없이 묻고 적는 것이다. 몇 달 뒤 생기는 유입 지도는 대체로 감과 다르다. 광고로 온다고 믿었는데 절반이 소개였다거나, 신경 쓰지 않던 경로가 알짜였다거나. 혁신하고, 수량화하고, 되는 것을 박제하는 바퀴의 원칙이 마케팅에도 그대로다.

다녀간 환자의 입, 그리고 소개의 설계

불안을 안고 왔다가 안심을 경험한 환자는 그 경험을 말한다. 후기로, 별점으로, 동네 커뮤니티의 한 줄로, 가장 강하게는 지인에게의 소개로. 그 목소리가 다음 환자의 확인 여정에서 안심의 증거가 된다. 새던 구멍이 끌어들이는 자석이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광고는 마중물 정도로 줄어도 신환이 유지되고, 소개로 온 환자는 이미 안심을 안고 오니 동의도 관계도 좋다. 소개는 마케팅을 잘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불안의 설계가 완성됐다는 증명서다.

다만 만족한 환자가 다 소개하지는 않는다. 계기가 없어서다. 조르면 안심을 판 병원이 마지막에 부담을 주는 격이 된다. 치료가 잘 끝난 순간 도움의 말로 한마디만 건넨다. "주변에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분이 있으면, 부담 없이 상담만 받아보러 오셔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그 문장이 심어둔 선택지는 어느 날 친구가 이가 아프다고 할 때 발화된다. 소개로 와준 것을 알면 두 사람 모두에게 감사를 표현한다. 감사는 소개의 연료다.

직원들과 함께 그리는 지도

불안의 지도는 원장실 서랍용이 아니다. 전화와 첫 내원의 불안은 데스크가, 대기의 불안은 진료실 스태프가, 비용 불안의 절반은 상담실이 다룬다. 원장이 직접 다루는 것은 진단과 치료의 지점뿐이다. 그러니 지도는 공유하고 지점마다 담당을 표시해야 완성이다. 지시보다 질문이 좋다. "환자들이 전화할 때 제일 불안한 게 뭘까요?" 현장은 답을 안다. 함께 그린 지도는 함께 지킨다. 자기가 찾아낸 불안의 지점을 지키는 직원은 시켜서 친절한 직원과 완전히 다르다.

진료 철학과 만나는 자리

마케팅이 불편했던 원장님께 드리는 화해의 문장이 있다. 환자의 불안을 줄이는 일이 마케팅의 정의라면, 그것은 의사가 되기로 한 이유와 다른 일이 아니다. 몸의 고통은 진료실에서, 마음의 불안은 병원 전체에서 다루는 것뿐이다. 그 단어가 계속 불편하면 환자의 불안을 돌보는 일이라고 불러도 된다. 저자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팔라고, 당신이 팔고 싶은 것을 팔지 말라고 했다. 병원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환자가 사고 싶은 것은 치료가 아니라 안심이다. 치료는 안심의 방법이다. 이 문장을 데스크 안쪽, 직원 쪽 벽에 붙여두는 병원들이 있다.

원장이 달라지는 지점

지금까지 마케팅은 바깥일이었다. 업체에 맡기거나 어쩔 수 없이 하는 지출. 잘 모른 채 돈만 나가니 밑 빠진 독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의가 바뀐다. 환자의 불안이 줄어드는 경험을 설계하고, 그 경험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일. 전화 응대를 고치는 것도, 상담 순서를 다듬는 것도, 치료 다음 날 문자 한 통도 전부 마케팅이다. 그리고 이것은 원장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마케팅이다. 매일 진료실에서 환자의 불안을 만나는 사람이 원장이니까. 그 지식이 병원 전체의 설계에 흐르기 시작하면 업체는 못 만드는 마케팅이 나온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마케팅은 환자를 모으는 기술이다. 더 안 되면 더 부어야 한다.
↓
가질 생각환자는 불안으로 떠나고 안심으로 온다. 환자의 불안이 줄어드는 경험을 설계하는 것, 그게 마케팅의 뿌리다.
이번 주에 할 것 · 해낸 것은 눌러 표시하세요

이제 마지막 기둥이 남았다. 기준과 자리와 게임과 경험을 한 단어로 묶는 기둥, 시스템이다. 그 단어 앞에서 많은 원장님이 마지막으로 머뭇거린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병원은 어쩐지 차가울 것 같다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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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16 / 16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병원은 차갑지 않습니까

열여섯 번째 마지막 질문이자, 재건축의 일곱 번째 기둥이다. 사연은 이랬다. 말씀은 다 맞는 것 같은데 마음 한구석이 계속 걸린다. 나는 환자 한 분 한 분과의 관계가 좋아서 개원했다. 매뉴얼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병원이 되면 우리 병원다움이 없어질 것 같다.

이 걱정을 마지막 기둥에 둔 이유가 있다. 이 걱정이 풀리지 않으면 앞의 여섯 기둥이 끝까지 세워지지 않는다. 손은 시스템을 만들면서 마음은 배신감을 느끼는 상태로는 몇 달을 못 간다. 그래서 그 책의 시스템 전략 장과 함께 정면으로 다룬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원장님이 지키려는 그것과 시스템은 적이 아니라 한편이다. 서로가 서로 없이는 못 사는 한편이다.

세 종류의 시스템

먼저 시스템이라는 말의 해상도를 올리자. 저자는 사업의 시스템을 셋으로 나눈다.

종류 무엇인가 병원에서
단단한 시스템 물건들 공간, 장비, 간판, 색, 체어와 동선과 대기실 의자
부드러운 시스템 사람이 일하는 방식 스크립트, 절차, 기준, 교육. 이 책에서 지은 것 대부분
정보 시스템 앞의 둘이 잘 도는지 알려주는 숫자 계기판

많은 오너가 시스템이라고 하면 단단한 것만 산다. 돈으로 사지는 것이라 쉽다. 그런데 사업의 성패는 돈으로 못 사는 나머지 둘이 가른다. 억 단위 시설에는 과감하면서 종이 한 장짜리 절차에는 인색했던 그 불균형을 이제 뒤집자. 사연의 걱정은 주로 부드러운 시스템을 향해 있다. 사람의 일에 방식이 정해지면 사람다움이 죽지 않느냐는 것이다. 답하기 위해 차가운 병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부터 보자.

차가운 병원의 해부

차가운 병원을 떠올려보자. 기다리는데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던 것. 물어보니 담당이 아니라던 것. 지난번에 말한 걸 또 묻던 것. 직원들이 바쁘게 오가며 나를 지나치던 것. 원인이 시스템 과잉인가. 정반대다. 대기 안내 절차가 없었고, 정보가 흐르는 구조가 없었고, 기록이 공유되지 않았고, 직원에게 여유가 없었다. 전부 시스템 부재의 증상이다. 저자의 말이 정확히 이 지점을 찌른다. 차가운 사업장은 시스템이 많은 곳이 아니라, 시스템이 없어서 모두가 지쳐 있는 곳이다.

따뜻함은 여유에서 나온다. 순서를 몰라 허둥대고 물건을 찾아 뛰어다니고 원장 눈치를 보는 직원에게 환자를 살필 에너지가 남아 있을 리 없다. 시스템은 반복되는 것들이 저절로 돌아가게 만들어서 사람의 에너지가 사람에게 가게 한다. 13장의 그 호텔을 기억하자. 세상에서 제일 따뜻했던 곳이 제일 시스템이 촘촘한 곳이었다. 우연이 아니라 인과였다.

환자 안전이라는 결정적 한 표

이 논쟁에 마지막 한 표를 던질 심판이 있다. 환자의 안전이다. 모든 것이 사람의 기억에 실린 병원에서는 환자 수백 명의 특이사항을 원장의 기억이 관리하고, 확인은 그날의 컨디션에 달려 있다. 의료에서 하나의 누락은 다른 업의 하나와 무게가 다르다. 기록과 확인 절차가 있는 병원은 원장이 지친 날에도, 신입이 응대한 날에도 그 하나를 구조가 잡아준다.

항공과 수술실이 이 논쟁의 선배다. 세상에서 가장 훈련된 사람들의 분야가 체크리스트를 쓰게 된 것은, 사고가 어려운 판단보다 쉬운 확인의 생략에서 더 많이 났고 베테랑일수록 그랬다는 것을 사고 데이터가 반복해서 보여줬기 때문이다. 익숙함이 확인을 생략하게 만든다. 그 결론은 판단은 사람에게, 기억은 시스템에였다. 전문성의 굴욕이 아니라 겸손이다. 시스템은 온기의 문제이기 전에 안전의 문제고, 환자에게 병원이 주는 가장 근본적인 온기가 안전이다.

환자가 쓰는 후기가 심판이다

최종 심판은 이론이 아니라 환자다. 따뜻했다는 후기의 근거를 모아보면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인다.

환자가 쓴 문장 그 뒤에 있는 것
전화 때부터 친절했어요 전화 기준
처음인데 안내가 자세했어요 초진 안내 절차
치료 다음 날 괜찮은지 연락이 왔어요 사후 연락 시스템
몇 달 만에 갔는데 지난 이야기를 기억하셨어요 기록과 공유
설명을 급하게 하지 않았어요 상담 시간 설계

차가웠다는 후기도 같다. 물어봐도 서로 미루더라, 예약했는데 한 시간 기다렸다, 갈 때마다 말이 다르다. 전부 시스템 부재의 증언이다. 환자들은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모른 채 시스템을 칭찬하고 있다. 시스템 있는 병원을 따뜻하다고 부르고 없는 병원을 차갑다고 부를 뿐, 판결은 이미 나 있다.

관계로 승부하는 병원의 진짜 무기

관계는 작은 병원의 진짜 무기가 맞다. 대형 병원은 구조적으로 익명이다. 환자가 많아 개인으로 기억될 수 없고 담당이 계속 바뀐다.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관계가 쌓일 그릇이 없다. 작은 병원에는 그 그릇이 있다. 같은 사람들이 같은 환자를 몇 년씩 본다. 그런데 그릇만 있고 시스템이 없으면 관계가 샌다. 기억이 유실되고, 바쁜 날 끊기고, 직원이 바뀌면 리셋된다.

작은 병원이 시스템을 갖추면 대형 병원이 되는 게 아니다. 대형 병원의 안정성과 동네 병원의 관계를 둘 다 가진, 시장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된다. 믿을 수 있으면서 나를 아는 곳. 환자가 정말 원하는 병원이 그것이다. 대형은 관계를 못 만들고 우리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이 비대칭이 작은 병원의 십 년 전략 전부다. 관계를 지키려고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은 무기를 두고 싸우러 가는 일이다.

정으로 버텨온 병원의 진실

정이 강점이라고 믿어온 병원은 그 정의 공급 곡선을 봐야 한다. 한가한 날의 정은 풍성하다. 예약이 꼬인 날, 직원이 빠진 날, 원장이 지친 날에는 인사가 짧아지고 설명이 생략되고 표정이 굳는다. 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을 낼 여유가 없어서다. 시스템 없는 병원의 정은 병원이 한가할 것이라는 조건부 정이다. 그리고 잘될수록 한가한 날은 줄어드니, 잘될수록 정이 줄어드는 역설이 생긴다. 시스템은 그 조건을 없앤다. 바쁜 날에도 예약이 꼬이지 않고 동선이 엉키지 않으면 정을 낼 여유가 남는다. 지킬 것이 있는 병원일수록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 병원다움은 어디에 사는가

이제 진짜 걱정으로 들어가자. 환자를 기억해주는 것, 서두르지 않는 설명, 진심 어린 안부. 이게 우리 병원다움이라면 묻고 싶다. 그 다움은 지금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가.

원장 개인에게다. 원장의 기억력과 마음과 그날의 여유에. 그래서 원장이 여유 있는 날에는 공급되고 바쁜 날에는 끊긴다. 원장을 만난 환자는 받고, 원장을 만나지 못한 접점에서는 못 받는다. 우리 병원다움이 아니라 원장님다움이었고, 그마저 배급이 불안정했다. 시스템은 그 다움을 죽이는 게 아니라 저장하고 배급하는 장치다. 환자를 기억해주는 다움은 기록 시스템에 저장하면 전 직원이 배급할 수 있다. 서두르지 않는 설명은 상담 시간 설계에 저장하면 바쁜 날에도 지켜진다. 치료 후의 안부는 다음 날 연락 절차에 저장하면 한 명도 빠짐없이 받는다. 다움을 사람의 기억에서 병원의 구조로 옮기는 것은 배신이 아니라 보존이고, 원장 한 사람의 다움이 병원 전체의 다움이 되는 확장이다.

기계 같은 병원들이 틀린 지점

반대편도 공정하게 보자. 번호표 뽑고 삼 분 진료받고 나오는 기계 같은 병원에도 시스템은 있다. 그런데 왜 차가운가. 그 절차들은 환자의 불안이 아니라 처리량을 위해 설계됐다. 시간당 몇 명을 도느냐가 유일한 지표고,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느냐는 빠져 있다. 병원을 차갑게 만드는 것은 시스템의 존재가 아니라 시스템의 목적이다. 그래서 당부한다. 효율이 좋아지는 재미가 붙으면 효율 자체가 목적이 되려는 유혹이 온다. 그때마다 돌아오자. 효율은 목적이 아니라 온기의 재원이다. 아낀 시간과 에너지가 환자에게, 직원에게, 원장의 삶으로 가고 있는지 계속 확인해야 한다.

온기를 지키는 두 가지 장치

절차가 사람을 기계로 만드는 경우도 분명 있다. 그래서 시스템을 지을 때 장치 두 개를 함께 심는다.

  1. 모든 절차의 머리에 목적을 적는다. 절차가 차가워지는 순간은 목적이 잊힐 때다. 대기 안내가 '환자가 기다림에 불안하지 않게'가 아니라 그냥 규정이 되는 순간 그 절차는 죽는다. 문서마다 첫 줄에 이 절차가 누구의 어떤 불안을 위해 있는지 적어두면, 예외 상황에서도 직원이 절차 대신 목적을 따를 수 있다.
  2. 표준과 재량의 경계를 분명히 한다. 전부를 정하면 사람이 질식한다. 정할 것은 안전과 일관성이 걸린 확인 절차, 정보의 흐름, 응대의 뼈대다. 맡길 것은 온기, 위로의 말, 그날의 배려다. 뼈대는 표준으로, 살은 사람으로. 기본이 정해진 병원에서 직원은 오히려 더 자기다워진다.

작게 시작하는 온기의 시스템 세 가지

온기가 목적인 시스템의 최소 단위를 세 가지 든다. 첫째, 치료 다음 날의 확인 연락. 큰 치료를 받은 환자에게 다음 날 전화나 문자 하나. 담당과 문구와 시점만 정하면 이번 주부터 돈다. 둘째, 기다림의 안내 기준. 예상보다 십오 분 이상 밀리면 먼저 가서 알려드린다는 기준 하나. 셋째, 기억의 카드. 그 호텔의 그 카드다. 환자의 특이사항과 지난 대화의 한 줄을 적는 자리를 차트 메모에 정하고 다음 방문 때 확인하는 습관.

셋 다 시스템이고, 셋 다 따뜻하고, 셋 다 돈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셋 다 환자가 혼자 남겨지는 순간을 없앤다. 치료 다음 날의 혼자, 대기실의 혼자, 몇 달 만에 온 날의 혼자. 따뜻한 병원이란 결국 환자를 혼자 두지 않는 병원이고, 시스템은 그 동행을 약속이 아니라 구조로 만드는 방법이다. 다만 셋을 한꺼번에 말고 하나만 고르자. 바퀴의 원칙이다. 그리고 이 걱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 자체를 좋게 보자. 이 걱정 없는 원장이 지으면 효율만 남은 병원이 나올 수 있다. 걱정은 버리지 말고, 절차마다 이게 환자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묻는 온기의 파수꾼으로 데려가자.

십 년 뒤에도 따뜻하려면

십 년 사이에 직원은 몇 바퀴 바뀌고, 원장도 나이 들고 지치고, 환자는 늘고 하루는 빡빡해진다. 마음에만 실린 따뜻함은 이 변화를 통과하지 못한다. 절차에 심어진 따뜻함은 통과한다. 다음 날 연락은 직원이 바뀌어도 나가고, 기다림의 안내는 바쁜 계절에도 돈다. 새로 온 직원은 그 절차를 배우며 이 병원이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배운다. 절차가 문화의 교과서가 된다. 시스템은 지금의 온기를 원장보다, 직원들보다 오래 살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병원다움을 아낀다면 그 다움에게 몸을 지어주자. 마음은 흐르지만 구조는 남는다.

원장님 자신을 위한 온기

이 기둥의 수혜자 목록에서 늘 빠지는 사람이 원장이다. 관계가 좋아서 개원했는데, 지금 그 관계를 누리고 있는가. 하루 수십 명을 쫓기듯 보며 마음은 있는데 시간이 없는 상태로 몇 년째 아닌가. 사라가 파이를 못 굽게 된 것처럼, 원장은 관계를 못 맺게 됐다. 시스템이 반복을 걷어가면 가장 먼저 돌아오는 것이 그 여유다. 환자의 눈을 보고 이야기할 몇 분, 궁금한 걸 물어봐줄 틈. 개원하던 날 그리던 그 진료실이다. 시스템이 촘촘했던 호텔은 따뜻했고, 시스템이 없던 사라의 가게는 사랑으로 시작했는데 차가워졌다. 온기의 운명을 가른 것은 마음의 크기가 아니라 그 마음을 담을 구조였다.

시작은 정보 시스템이 제일 쉽다

단단한 시스템은 개원 때 이미 돈을 가장 많이 들인 곳이다. 부드러운 시스템은 이 책 내내 지은 기준과 절차와 자리의 세 줄로, 시간이 걸리는 공사다. 정보 시스템은 가장 빨리 선다. 숫자 세 개를 정하고, 세는 사람을 정하고, 보는 날을 정하면 된다. 정보 시스템은 나머지 둘의 감시자이기도 하다. 전화 기준을 만들었는데 예약 전환이 그대로면 기준을 다시 보라는 신호고, 리콜 절차를 깔았는데 재방문이 늘면 그 절차가 일한다는 증거다. 숫자 없는 시스템은 지어놓고 상태를 모르는 건물이다.

시스템이 사업을 하고, 사람이 시스템을 한다

시스템 장을 관통하는 종합 명제는 이것이다. 시스템이 사업을 운영하게 하라. 그리고 사람이 그 시스템을 운영하게 하라. 앞 절반만 들으면 차갑지만 뒤 절반이 심장이다. 병원으로 번역하면, 시스템이 병원을 돌리고, 직원은 그 시스템을 돌보고, 원장은 전체를 설계한다. 시스템은 반복을 맡고, 직원은 사람을 맡고, 원장은 방향을 맡는다. 누구도 기계의 일을 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없는 병원에서 사람들은 기계처럼 일하고, 시스템이 있는 병원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사람의 일을 한다.

지금까지 원장님 마음속에서 시스템과 온기는 시소였다. 그 저항은 원장님이 좋은 의사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제 둘의 관계는 토대와 건물이다. 토대가 튼튼할수록 건물이 높이 올라간다. 이 전환이 되면 절차 한 장을 지으면서 죄책감이 아니라 목적의식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지은 시스템은 처음부터 따뜻하다.

이것으로 일곱 기둥이 다 섰다. 인생의 목적, 완성의 정의, 자리의 설계, 경영의 시스템, 사람의 게임, 환자의 안심, 그 전부를 담는 시스템. 그리고 그 일곱을 세운 공법, 개선의 바퀴. 방향의 기둥이 먼저, 실행의 기둥이 그 위, 그릇의 기둥이 마지막이었다. 방향 없는 시스템은 차갑고, 시스템 없는 방향은 공허하다. 일곱이 한 몸인 이유다.

TURN · 버릴 생각 → 가질 생각
버릴 생각시스템은 온기의 반대말이다. 우리 병원다움은 시스템화되면 죽는다.
↓
가질 생각시스템은 온기의 보존 장치다. 구조에 실린 다움은 바쁜 날에도 배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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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병원은 원장의 눈을 닮는다

열여섯 개의 질문이 끝났고, 일곱 기둥이 다 섰다. 책을 닫기 전에 처음에 한 약속을 지키려 한다. 끝났을 때 딱 하나를 정해드리겠다는 약속이다.

열여섯 개는 실행 목록이 아니라 지도다

이 책에는 과제가 열여섯 개 나온다. 이걸 다음 주에 다 시작하면 안 된다. 9장의 바퀴에서 본 그대로다. 다섯 개를 동시에 시작하면 다섯 개가 전부 어중간해지고, 어중간한 것은 전부 죽고, 직원들은 또 하나를 학습한다. 원장님의 선언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 그러니 열여섯 개는 전체를 한번 눈에 담아두는 지도다. 걷는 것은 맨 앞 계단 하나부터다.

그 맨 앞 계단이 8장 끝에서 말한 오 분짜리 두 가지다. 달력을 열어 다음 주에 두 시간짜리 칸 하나를 확정하는 것. 그리고 데스크에 카톡 한 통을 보내는 것. 다음 주부터 매주 그 시간에는 예약을 잡지 말아달라고, 병원을 정비하는 시간이라고. 합쳐서 오 분이다.

이것이 하나뿐인 정답인 이유는 나머지 열다섯 개가 전부 그 두 시간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기준을 적는 것도, 인생의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자리의 도면을 그리는 것도, 바퀴를 돌리는 것도 병원 위에서 일하는 시간이 있어야 시작된다. 그 칸이 없으면 이 책은 좋은 읽을거리로 끝나고, 그 칸이 있으면 열여섯 개가 하나씩 차례로 그 안에 들어간다.

그 책이 마지막에 하는 말

사라를 기억할 것이다. 파이가 좋아서 가게를 열었다가 파이를 미워하게 된 사람. 들어가며에서 밝힌 그 책, 마이클 거버의 『사업의 철학』은 사실 저자가 그 사라와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기업가라는 신화도, 원장 안의 세 사람도, 병원의 나이도, 관점의 열쇠도, 일곱 기둥도 지친 사라 앞에서 하나씩 펼쳐진 이야기들이다. 이 책이 지나온 순서 그대로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사라에게 작별의 편지를 쓴다. 거기서 남기는 것은 새 기법이 아니다. 내 말로 옮기면 이렇다. 당신의 가게가 문제였던 적은 없다. 당신이 가게를 보는 눈이 전부였다. 그 눈은 이제 바뀌었고, 가게가 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사업은 주인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고, 사업을 고치는 일은 결국 자기를 고치는 일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 책의 한국어 제목에는 사업 뒤에 철학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직접 읽을 원장님께 당부가 하나 있다. 그 책은 빵집과 파이 가게의 언어로 쓰여 있으니 병원으로 번역하며 읽어야 한다. 이 책이 그 번역의 견본이다. 그리고 한국 개원가에는 그 책이 모르는 조건이 두 개 있다. 병원은 하나만 열 수 있고, 진료는 원장만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책의 확장의 꿈은 우리에게 깊이의 꿈으로 번역된다. 하나를 완성하는 것. 원장이 원장의 일만 하는 병원이다.

나에게도 이 책이 그랬다

나도 갇혔던 사람이다. 원장님들이 들려준 질문 속의 그 밤들을 나도 지났다. 잘되는데 행복하지 않던 시기, 모든 게 나를 통과해야 돌아가던 시기, 줄일까 심각하게 계산하던 시기까지. 그때 정말 많이 읽었다. 대부분 기법이었고, 도움은 됐지만 갇힌 방의 가구 배치를 바꿔주는 정도였다. 방 자체를 다시 보게 해준 책은 몇 권 안 됐고, 그중 하나가 이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병원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다. 대신 내가 바뀌었고, 그다음 몇 년에 걸쳐 병원이 따라왔다. 그 책은 사라의 완성된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라가 눈을 되찾고 가게를 다시 보기 시작하는 데까지만 보여준다. 처음엔 아쉬웠는데 나중에 알았다. 그게 정직한 결말이라는 것을. 책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눈까지다. 걸음은 각자의 몫이다. 이 책도 같은 자리에 선다. 눈과 지도까지는 드렸다. 다음 주 그 두 시간의 걸음은 원장님의 것이다.

감옥이라는 단어와의 작별

이 책 내내 감옥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 단어의 유효기간은 여기까지다. 감옥은 진단의 언어지 삶의 언어가 아니다. 이제 원장님의 병원을 부를 이름은 공사 중인 집, 도면이 나온 집, 착공일이 잡힌 집이었으면 한다. 같은 건물이어도 감옥이라 부르는 사람과 공사 중이라 부르는 사람의 아침은 다르다. 벽은 그대로인데, 가두는 벽이 지어지는 벽으로 바뀐다.

원장님이 달라지면 그 달라짐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기분 대신 기준으로 움직이는 원장을 만나는 직원들, 쫓기지 않는 설명을 듣는 환자들, 저녁이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나는 가족. 그리고 개원 전날 밤의 그 설레던 사람을, 십 년의 경험을 가진 지금의 원장님이 다시 만난다. 그 사람이 지으려던 병원을 지금의 원장님이 마저 짓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오 분은 오 분짜리가 아니다.

버릴 생각. 나는 이런 사람이라서, 이 나이라서, 여기까지라서.

가질 생각. 병원은 원장의 눈을 닮는다. 눈이 달라진 오늘, 병원은 이미 달라지기 시작했다.

각 장 끝에 적어둔 버릴 생각과 가질 생각을 흔들리는 날 다시 펴보시기 바란다. 그날 필요한 한 문장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혼자 하면 사흘이고, 구조와 동행이 있으면 계속된다는 것도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그동안 질문을 들려준 원장님들께 감사드린다. 그 밤들이 이 책을 만들었다.

십 년 뒤 돌아볼 때, 이 책을 덮은 날이 감옥의 마지막 날이 아니라 착공의 첫날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덮은 날 밤의 그 오 분을, 잊지 않으시기를.

차례

—몇 번이고 다시 꺼내 읽는 책이 하나 있다
PART 01 · 꿈이 감옥이 되는 경로
01개원했는데 페이닥터 때보다 낫다고 말을 못 하겠습니다02저는 사업가 체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03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돌아갑니다. 개원 초라 당연한 거 아닙니까04직원이 늘었는데 제 일은 안 줄었습니다05솔직히 다시 줄이고 싶습니다. 저 혼자 할 때가 나았습니다06잘되는 병원들은 도대체 뭐가 다릅니까
PART 02 · 감옥의 문을 여는 열쇠
07좋은 진료만 하면 환자는 오는 것 아닙니까08이렇게 십 년을 벌어도, 뭐가 남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PART 03 · 병원 재건축, 일곱 개의 기둥
09뭘 해도 그때뿐입니다. 지속이 안 됩니다10병원이 잘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11어디까지 가야 성공한 겁니까12직원 네 명인데 조직도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13좋은 실장만 오면 될 것 같은데, 안 옵니다14요즘 직원들은 주인의식이 없습니다15광고비만 나가고 신환은 그대로입니다16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병원은 차갑지 않습니까—병원은 원장의 눈을 닮는다